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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768
한자 暘溪精舍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 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경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0년 8월 7일연표보기 - 양계정사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88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양계정사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재지정
현 소재지 양계정사 -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 7 지도보기
성격 정사
양식 ‘ㄱㄴ ’자형|3량가|홑처마|맞배기와집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영일정씨 종중
관리자 영일정씨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에 있는 양계(暘溪) 정호인(鄭好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사.

[개설]

양계정사는 조선 중기 문신인 양계 정호인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정사건물이다. 정호인은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자견(子見), 호는 양계(暘溪)이며 정안번(鄭安藩)의 아들이며,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낸 정세아의 손자이다. 정호인은 1618년(광해군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7년(인조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위치]

영천 시내에서 금호 방면 국도 28호선[최무선로]를 따라가다 중앙 사거리가 나오면 청송 방면 국도 35호선을 타고 3㎞가량 진행하면 대전리 초입에 이르게 된다. 대전마을로 들어서서 고현천을 건너는 상대전교가 나오면 다리를 건넌 후 우회전해서 비포장길을 따라 150m가량 들어가서 좌측의 마을 뒷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오르면 산 중턱에 양계정사가 있다.

[변천]

양계정사의 명확한 연혁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어 건립 연대와 초기 건립 형태를 가늠할 수 없다.

[형태]

양계정사는 ‘ㄴ’자형의 정사 건물과 ‘一’자형 관리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사 건물과 관리사 건물을 앞뒤로 간격을 달리한 후 나란한 방향을 바라보게 배치하여 ‘ㄱㄴ ’자 형태가 되었다. 정사는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로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배치한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 건물이였으나 후대에 좌측 온돌방 뒤로 3칸 중문간을 달아 ‘ㄴ’형 건물이 되었다.

구조는 3량 가 맞배기와집으로 높은 곳에 터를 마련하고 자연 암반과 자연석을 활용하여 3~6벌대로 쌓고 자연석 초석을 놓은 다음 방형 기둥을 올렸다. 평면 구성은 가운데 대청 2칸을 기준으로 좌·우에 방1칸씩을 덧달고 좌측 방 후면으로 방 1칸, 마룻방 1칸, 중문간 순으로 배치한 다음 정면과 측면, 배면에 걸쳐 쪽마루를 설치했다.

상부 가구 구조는 3량 가로 방형 기둥 위에 보를 결구하고 장혀와 도리를 얹어 서까래를 받도록 간략하게 구성했다. 창호는 온돌방 전면에 머름을 생략한 쌍여닫이 세살문을 청방간에는 삼분합문을 각기 달았으며, 대청 배면에는 견실한 창호를 위해 설치하던 가운데 설주가 남아 있으며 나머지 한 칸에는 외여닫이문을 설치해 안마당으로 통행하기 쉽게 했다.

관리사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에 3량 가 맞배기와집으로 가운데 대청 1칸을 기준으로 좌·우에 방 1칸씩을 덧붙이고 좌측 방 옆으로 정지 1칸을 덧붙여 구성하고 있다. 구조는 3량 가 맞배기와집으로 3~4벌대 기단을 마련한 후 자연석 초석을 놓은 다음 초석 위에 네모 기둥을 올리고 기둥 위로 장혀와 도리를 올린 민도리집이다.

창호는 대청 전면으로 쌍여닫이 세살문을 청방간에는 외여닫이 띠살문을 각기 달았고 대청 배면에는 쌍여닫이 띠장판문을 달았는데 고식인 가운데 설주가 남아있다. 방 전면에는 외여닫이 띠살문을 설치했다.

[현황]

양계정사가 있는 곳은 마을의 뒷산 중턱이며 마을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해당된다. 정사에서 바라보는 고현천은 다른 정사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했으나 근래에 들어 정사가 자리한 곳 뒤쪽으로 28번 국도가 개통되면서 북동쪽 경관이 예전만 못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양계정사는 정비가 이루어진 후 관리가 잘 이루어지고 있지만 마을에서 떨어져 있는 관계로 자칫 관리가 소홀해질 소지가 있다. 관계기관과 문중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정사로 진입하기 위한 진입로가 어디인지 확인하기 어렵게 되어 있어 내방객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상태로 진입 표지판 정비가 필요하다. 1990년 8월 7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8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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