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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306
한자 金斗-
이칭/별칭 원서(元瑞),성암(省菴)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대기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최미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묘소|단소 김두황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대기리
사당|배향지 포효각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대기리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김해

[정의]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효자.

[가계]

김두황은 가야(加耶)의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하고, 절효공(節孝公) 김극일(金克一)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등을 배출한 김해 김씨(金海 金氏) 삼현파(三賢派) 후예이다.

자는 원서(元瑞), 호는 성암(省菴)이며, 1817(순조 17) 5월 7일에 태어나 1869(고종 6) 3월 11일 5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김현월(金顯月)이며, 증조는 김순선(金舜善), 조부는 김태옥(金泰玉)이다.

아버지는 김덕오(金悳五)이며, 어머니는 장흥 고씨(長興 高氏)로 고태재(高泰載)의 따님이다. 부인은 달성 서씨(達城徐氏)로 서희재(徐禧載)의 따님이며, 슬하에 3남1녀를 두니 아들은 김용옥(金容沃)·김용호(金容昊)·김용윤(金容潤), 사위는 전주인(全州人) 이병로(李丙魯)이다.

[활동 사항]

김두황은 어릴 때부터 지극히 효성스러워 맛있는 음식을 얻으면 반드시 소매에 거두어 부모님께 가져다 드렸다.

자신의 집과 부모님의 거소가 제법 거리가 있고 그 사이에 강이 있었으나 사시사철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에 세 차례씩 건너가 문안을 드리고 가사를 돌보았다.

아버지께서 노환이 들어 위독해지자 도끼로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여 목숨을 3년간 연장케 하는 등 효행을 실천함에 향중에서 천거하여 정려를 받아 비를 세우고 각을 세워 그 효행을 기리고 있다.

[묘소]

김두황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대기리 후산(後山) 병좌(丙坐) 향으로 있으며, 문소(聞韶) 김도화(金道和)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대기리에 포효각(褒孝閣)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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