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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426
한자 鄭煥直
이칭/별칭 치우(致右),좌겸(左兼),우석(愚石),백온(伯溫),동엄(東广)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44년 5월 19일연표보기 - 정환직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5년 12월 - 정환직 고종황제의 밀지를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06년 3월연표보기 - 정환직 정용기로 하여금 영천에서 산남의진 결성토록 함
활동 시기/일시 1907년 9월 - 정환직 산남의진 제2대 대장에 취임하여 일군과 격전을 전개함.
활동 시기/일시 1907년 11월 6일 - 정환직 청하에서 체포됨
몰년 시기/일시 1907년 11월 16일연표보기 - 정환직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3년 - 정환직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63년 - 정환직 추모비 건립[1963년]
추모 시기/일시 1985년 - 정환직 추모비 건립[1985년]
출생지 정환직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검단리]지도보기
활동지 정환직 - 경상북도 일대[영천, 영일, 청송 등]
묘소 정환직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 지도보기
소재지 추모비 - 경상북도 영천시 창구동 영천문화원지도보기
소재지 추모비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 충효재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본관 영일
대표 경력 산남의진 제2대 의병장|중추원 의관|산남도찰사

[정의]

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장.

[개설]

정환직(鄭煥直)은 한말 경상도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부대인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제2대 의병장이다.

[가계]

정환직의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치우(致右), 자는 좌겸(左兼), 호는 우석(愚石)이라 하였으나, 환직(煥直)으로 개명 후 자는 백온(伯溫), 호는 동엄(東广)으로 바꾸었다. 1844년 아버지 정유원(鄭裕원)과 어머니 순천 이씨(順天李氏) 사이에서 지금의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당시 검단리]에서 태어났으며 1907년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정환직은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직후, 고종황제의 밀지를 받고 아들 정용기(鄭鏞基)와 상의하여 영남 지방에서 의병을 일으켜 관동 지방으로 진군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는 아들 정용기로 하여금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키도록 명하고 자신도 서울에서 관직에서 물러난 동지들과 협력하여 군사를 모집하였다.

강원도 강릉으로 이동하여 아들 정용기 부대와 합류한 그는 재차 서울로 진공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아들 용기가 경주진위대의 간계로 체포되자 갖은 노력을 다해 석방을 주선한 뒤, 영천으로 내려와 이한구(李韓久)·손영각(孫永珏)·정순기(鄭純基) 등을 만나 재차 거의하여 강릉으로 이동할 것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의병진의 북상 계획이 늦어지므로 1907년 8월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서 북상을 독려하였다.

그 해 9월 아들 정용기가 입암 전투에서 전사하자 스스로 산남의진 제2대 대장에 취임한 정환직은 흩어진 의병을 수습하여 진영을 정비하고 북동대산으로 본진을 이동하여 본격적인 대일 항전을 전개하였다.

정환직 부대는 청하·흥해·신녕·의흥·영덕 등지에서 분파소를 습격하고 무기를 탈취하는 한편 일본 순사와 한국인 순검을 사살하는 등 많은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불행히도 1907년 11월 7일 청하면 각전에서 일본군에 의해 체포되었다.

일본 헌병은 그를 대구로 호송하면서 여러 방법으로 회유하려 하였으나 끝내 굽히지 않음에 다시 영천으로 호송하여, 1907년 11월 16일[양력 12월 20일] 지금의 영천시 창구동 소재 조양각 밑 둔치에서 총살형을 했다.

[저술 및 작품]

정환직이 순국하기 전날 최후로 남긴 시가 있다.

신망심불변(身亡心不變)  [몸은 없어지나 마음마저 변할쏘냐.]

의중사유경(義重死猶輕)  [의는 무거우나 죽음은 가볍도다.]

후사빙수탁(後事憑誰託)  [나머지 뒤의 일을 누구에게 맡기리오.]

무언좌오경(無言坐五更)  [말없이 앉아 있노라니 오경이 되었구나.]

[묘소]

정환직의 묘소는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으며, 1963년 영천시 창구동 영천문화원 내에 지역민들에 의해 추모비가 건립되었고, 1985년 후손들이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 충효재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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