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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428
한자 曺秉華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조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8년 8월 18일연표보기 - 조병화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4년 8월 - 조병화 일본 오사카에서독립계몽활동 전개하다가 체포됨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조병화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몰년 시기/일시 1998년연표보기 - 조병화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5년 5월 - 조병화 추모비 건립
출생지 조병화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 지도보기
활동지 조병화 - 일본
소재지 추모비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동공원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조병화(曺秉華)의 본관은 창녕. 1908년 지금의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에서 태어났으며, 1982년 미국으로 건너가 1998년 세상을 떠났다.

[활동 사항]

조병화는 1932년 4월 일본 오사카[大阪]의 계시교회에서 ‘삼천리강산을 나의 무대로 삼아’라는 제목으로 동포들에게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강연을 하던 중 일경에게 연행되어 고초를 겪었다.

이후에도 계속하여 오사카의 한국인을 상대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고, 1934년 10월에 ‘기독청년들아 분기하라’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는 등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또한 1943년 6월 일본 산구현 후협정으로 이주하여 일제의 한국인 차별 대우의 부당성을 폭로·규탄하였다. 1944년 5월에는 동포들에게 태평양전쟁의 추이와 조국 독립의 멀지 않음을 역설하여 항일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한글 보존을 위하여 활동하던 중 1944년 8월 일경에 체포되었다. 1945년 8월 21일 산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언도받고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2005년 5월 영천항일운동선양사업회에서 영천시 화북면 오동공원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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