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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645
한자 百興庵
이칭/별칭 백지사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청통로 951[치일리 479]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
집필자 이동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861년연표보기 - 백지사[백흥암]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531년 - 백흥암, 법화경판 간행
개칭 시기/일시 1546년연표보기 - 백지사에서 백흥암으로 개칭
특기 사항 시기/일시 1546년 - 백흥암 인종 태실의 수호 사찰 지정
중수|중창 시기/일시 1651년 - 백흥암 중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677년 - 백흥암 중수
중수|중창 시기/일시 1730년 - 백흥암 보화루 중건
중수|중창 시기/일시 1858년 - 백흥암 영산전 중수
현 소재지 백흥암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청통로 951[치일리 479]
성격 조계종
전화 054-335-2988
창건자 혜철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소속 암자.

[개설]

백흥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산내 암자이다. 신라 경문왕(景文王)[?~875]때 혜철 국사(惠哲國師)[785~861]가 완공하였으며, 주변에 잣나무가 많아 창건 당시에는 백지사(栢旨寺)라 불렀다. 1546년(조선 명종 원년)에 인종의 태실을 팔공산에 모시게 되자 수호 사찰로 정하여 크게 고쳤고, 이때 지금의 백흥암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암자로서는 규모가 큰 편이며 현재는 비구니의 수도 도량이다.

[건립 경위 및 변천]

백흥암적인(寂忍) 혜철(惠哲)이 861년 백지사(栢旨寺)로 건립하였다. 그 뒤 조선 전기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546년(명종 1) 인종 태실의 수호 사찰로 정해지면서 중건되어 백흥암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1651년(효종 2) 중건했으며, 1677년(숙종 3) 중수했다. 1730년(영조 6) 보화루(普化樓)를 중건했고, 1858년(철종 9) 청봉(靑峰)이 영산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때는 수백 명이 수도했다고 하며, 현재는 비구니의 수도 도량이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백흥암의 현존 건물로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영산전·명부전·문루·산신각·선실·원주실·요사채 등이 있다.

[관련 문화재]

중심 전각인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이 보물 제790호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 수미단(須彌壇)이 보물 제486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1531년(중종 26)에 간행된 법화경판(法華經板)과 이 절을 거쳐 간 24인의 큰스님들의 영정(影幀)이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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