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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726
한자 養淸齋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리 신화로 933-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우경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세기 - 양청재 정자로 건립[추정]
개축|증축 시기/일시 조선 후기 - 양청재로 개축
현 소재지 양청재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리 신화로 933-1 지도보기
성격 재사
양식 장혀수장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1칸
지붕 홑처마 맞배지방
소유자 청주 양씨 신녕파 문중
관리자 청주 양씨 신녕파 종손 양병찬
문화재 지정 번호 비지정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리에 있는 청주 양씨 신녕파 문중 재실.

[개설]

양청재(養淸齋)는 조선 세조 때의 학자로, 천품이 순후하고 우애가 돈독했던 성균관 교리 양자한(楊自漢)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정자로 현재 재사로 사용하고 있다.

[위치]

양청재화산1리 화산마을에서 삼창 방면으로 1.2㎞ 지점 도로변에 있다. 덕강서원과 담장을 경계로 인접하고 있고, 부지 내에는 양효지 비각과 관리사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변천]

양청재는 대청 상부 종도리 장혀 하부에 상량 묵서의 흔적은 보이나 지워져 판독할 수 없으므로 정확한 건립연대를 밝히기가 어렵다. 1935년에 간행된 『화산지(花山誌)』 정사조에는 누정과 재실의 건립연대를 밝히고 있으나 그 이름만 있거나 오래되어 잘 알지 못하는 것은 그렇지 못하다.

양청재『화산지』에 “양자한유정금위재사(楊自漢遺亭今爲齋舍)”라고 되어있는데 아마도 건립된 지 오래되고 양자한이 남긴 정자를 지금은 재실로 쓴다는 것만 남겼으리라 생각된다.

양자한은 조선 세조 때의 인물로 건립연대를 추정해 보면 15세기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건물은 15세기의 건물로 보기는 어렵고 그간 많은 중수 등의 변화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화산지』의 기록만 본다면 양청재는 정자건물로 15세기에 창건된 것으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라 판단된다.

[형태]

양청재덕강 서원 좌측에 담장 등 특별한 구획의 경계 없이 완만한 경사지에 재실만 단동으로 남향하여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로, 실의 배열은 가운데 2칸 대청을 중심으로 넓게 조성하고 좌·우에 온돌방을 작게 드린 중당협실형이다. 온돌방 배면으로 벽장을 설치하여 평면을 확장시키고 대청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기단은 정면의 경우 자연석을 5단으로 쌓을 정도로 높게 조성하고 대청 앞쪽으로 기단면 일부를 파서 4~5단의 계단을 만들었다. 초석은 넓고 평평한 자연석 초석을 2중으로 놓고 그 위에 대청마루 전면에 원주를 세우고 나머지는 각주를 세웠다. 기둥 단면은 원주의 지름은 260㎜, 각주는 240㎜로 하부에서 상부로 약하게 민흘림을 두고 있다. 창호는 온돌방의 경우 전면에는 좌측 방에 쌍여닫이 세살창, 우측 방에 외여닫이 세살창, 청방간에 쌍여닫이 굽널세살문을 두었다. 또한 판벽의 대청의 뒷벽에는 쌍여닫이 판문을 달았다.

가구는 굴도리를 사용하고 대들보 위에 판대공을 세워 종보를 받게한 3량가 구조 형식이다. 청방간에는 문을 달기위한 상인방을 끼웠다. 지붕은 홑처마에 맞배지붕으로 기와 끝은 와구토로 마감하였지만 부분적으로 탈락되어 있다.

[현황]

양청재는 경사진 부지에 담장 없이 건물만 단독으로 있으며, 우측으로 블록담장으로 둘러진 덕강 서원이 배치되어 있다. 건물 배면에는 대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고, 배면 기단이 경사지에 묻혀 있으며, 배수로가 없어 우천 시 목부재를 훼손시킬 우려가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 벽체 및 창호는 탈락한 곳 없이 깨끗하며 기와는 노후 되고 기왓골이 교란되어 있다. 좌측 내림마루 끝은 기와 일부가 탈락되어 내부 흙이 노출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양청재는 정자(亭子)로 건립되어 현재는 재사 용도로 사용하고 있으나, 영천 지역의 일반적인 재사 건축 형식이 비교적 잘 나타내고 있다. 온돌방 전면에는 함실아궁이가 있었던 듯 하지만 현재는 벽으로 마감되어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