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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729
한자 孝德齋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1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우경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00년대 - 부친묘소 앞에 효심재로 창건
이전 시기/일시 1883년연표보기 - 효심재를 마을내로 이건, 효덕재라 편액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0년대 - 기단, 목부재, 벽체, 번와, 담장보수
현 소재지 효덕재(孝德齋)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1리 지도보기
성격 재사
양식 장혀수장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1칸
지붕 홑처마 맞배지붕
소유자 경주 이씨 국당공파
관리자 경주 이씨 국당공파 이진탁[337-3353]
문화재 지정 번호 비지정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리에 있는 이시손과 아들 이막배를 추모키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

[개설]

이막배의 아버지는 군자감정(軍資監正) 이시손(李時孫)이며, 어머니는 영천 이씨(永川 李氏)로 목사(牧使) 이두표(李斗杓)의 딸이다. 이막배는 1611년 광해군(光海君) 신해년(辛亥年) 2월 13일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1리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창원 황씨(昌原黃氏)로 진사(進士) 황택중(黃宅中)의 딸이며, 슬하에 4남 1녀를 두니 아들은 이만하(李萬賀), 이만복(李萬福), 이만헌(李萬憲), 이만생(李萬生), 사위는 함안인(咸安人) 조성채(趙成埰)이다.

이막배(李莫培)의 자는 내본(乃本), 호는 화계(華溪)이며, 7세 때 천형지체(天形地體)를 묻는 질문에 방원(方圓)이라 답하자 조부 이온수(李蘊秀)가 아꼈으며, 13세에 어머니가 이질을 앓자 하늘에 기도하며 빌자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석정(石井)의 물로 고치라고 하자 바위를 뚫어 어머니의 병을 낳게 하니 주변에서 일러 효정(孝井)이라 하였다.

이막배는 사람들이 알아줌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경전 탐구에 진력하고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1674년 현종(顯宗) 갑인년(甲寅年) 11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이정산의 묘소는 화남면 귀호1리에 있고, 이막배의 묘소는 화산면 화산리 화촌마을 큰 등 뒷산에 있다.

[위치]

효덕재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리 화촌 마을회관에서 북쪽으로 100여m 우측에 있다.

[변천]

창건 당시[1600년대] 효덕재이막배가 아버지 묘소 앞에 효심재(孝心齋)를 건립하고 항상 그곳에 거주하며 어버이의 뜻을 잊지 아니했다. 이막배 사후 후손들이 이막배의 효심을 깨닫고 1883년 영천시 화산면 화산리 화촌마을로 이건해 ‘효덕재’라 편액하여 학문하는 곳으로 사용했다. 효덕재 대청 상부 종도리 장혀 하부에 상량 묵서가 희미하게 남아 있으나 판독이 어렵다.

경주 이씨 국당공파 영천 입향조의 16세손인 이태호가 묵서명을 수첩에 기록하여 두었다. 종도리 장혀의 묵서명과 기록본을 대조하여 본 결과 효덕재의 초창은 1883년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효덕재기(孝德齋記)’ 현판 내용은 1992년에 김헌주가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문을 쓰고부터 서당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초창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과정을 거쳤으며 현재의 건물은 20여 년 전에 번와공사를 하고 자연석 기단을 시멘트 모르타르로 보수하였으며, 원래 토석담장이었던 것을 블록담장으로 보수하였다.

[형태]

효덕재는 평평한 대지에 남동향하여 세워져 있다. 재사 일곽을 시멘트 블록담장으로 쌓고 좌측 담장 중앙에 사주문을 세워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주문 앞에는 수령이 오래된 고목이 한그루 서 있다.

대청 전면 납도리에 ‘효덕재(孝德齋)’ 현판이 걸려 있으며 대청 배면 납도리에 ‘효덕재기(孝德齋記)’ 편액이 걸려있다. 재사는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집이다. 실의 배열은 가운데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온돌방 2칸, 우측에 온돌방 1칸을 드린 형식이다. 좌측 온돌방은 주칸이 2,420~2,460㎜, 대청의 주칸은 2,610~2,640㎜, 우측 온돌방은 2,870㎜이며 측면 주칸은 3,130㎜이다.

마루와 온돌방 전면에 쪽마루를 설치하여 공간을 확장시켰는데 온돌방 앞쪽에는 평난간을 둘렀고 대청 앞에 설치한 쪽마루는 대청보다 한단 낮게 만들었다. 기단은 자연석 2단 높이로 축조하였는데 외피를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하고 대청 앞쪽으로 계단을 설치하였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했는데 기단 외피로 인해 초석이 묻혀 있다. 기둥은 모두 각기둥을 사용하였는데 단면 크기가 230×230㎜로 건물 규모에 맞는 튼튼한 것을 사용하였다. 문은 방의 경우 전면 쪽은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았고 양 측면과 배면에는 외여닫이문 달았다.

대청 전면은 개방되어 있고 뒷벽에는 쌍여닫이 판문을 달았다. 청방간에는 쌍여닫이문을 달았는데 상부 대들보 아래에 상인방을 따로 두었다. 가구는 납도리와 장혀, 보아지, 대들보로 결구한 간략한 3량 구조로 되어 있으며, 직사각형태의 대들보 위에 짧은 동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게 하였다. 지붕은 홑처마에 맞배지붕으로 기와 끝단은 수막새를 이엇다.

[현황]

효덕재는 초창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 과정을 거쳤다. 현재의 건물은 20여 년 전에 기단, 목부재, 번와, 벽체, 담장 등에 보수가 이루어졌다. 보수 시 자연석 기단을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하였고, 목부재에 오일 스테인을 칠했다. 대청 상부는 연등천장으로 목부재가 노출되어 있고 연목 사이에는 회를 발라 마감하였다.

벽체는 전체적으로 회미장 하였는데 탈락됨이 없이 깨끗하다. 기와는 상태가 양호하나 건물 전·후면의 처마 가운데 부분이 아래로 처져 처마선이 변형되어 있다. 건물 내부 온돌방 벽체와 천정은 종이벽지와 종이반자로 마감하였으며 바닥은 현 실정에 맞게 비닐장판지를 깔았다.

건물의 목부재와 외관은 깨끗하게 보존·관리 되고 있으나 전면의 기둥이 좌측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다. 효덕재는 매년 3월에 묘제를 지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효덕재는 보수하면서 건물 원형이 다소 훼손되었지만 영천 지역의 현존 재실 중에서는 건립시기가 빠르고 건축양식과 기법에 있어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