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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천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762
한자 古川齋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고천길 12-227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우경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70년연표보기 - 고천재 건립
현 소재지 고천재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고천길 12-227 지도보기
성격 재사
양식 장혀수장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1.5칸
소유자 영일정씨 사정공파
관리자 영일정씨 사정공파
문화재 지정 번호 비지정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고천리에 있는 정경치(鄭卿緇)와 정문영(鄭聞英)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

[개설]

정경치는 조선 초기의 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그 외 인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고천리에는 영일 정씨 사의공파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으며, 훈도 벼슬을 지낸 정세홍(鄭世弘)의 부 정문영(鄭聞英)과 조부 정경치의 선영(先塋)이 있는 곳이다.

[위치]

고천재(古川齋)는 고냇골 골짜기에 있다. 임고 교차로에서 안강[포항] 방면으로 3.9㎞ 이동하면 우측에 고천 양계장이 보이고, 양계장 뒤편에 고천재가 있다.

[변천]

고천재의 창건에 관한 내용은 알 수 없고 ‘고천재사중건기(古川齋舍重建記)’ 편액에 따르면, 1968년에 묘표(墓表)를 세우고 1969년 봄에 헌집을 헐어낸 터에 정당(正堂) 4칸과 포사(包舍) 3칸을 동시에 건립을 시작하여 다음 해인 1970년 초에 준공했다고 한다.

[형태]

고천재는 평탄한 대지에 배면을 제외한 일곽에 블록담장으로 둘러져 있고 정면에 출입문을 두었다. 재사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규모로 전면에 퇴칸을 둔 전퇴집이며, 실의 배열은 가운데 둔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방 2칸, 우측에 1칸의 방을 드린 형식이다. 평지에 건립한 건물로 기단은 자연석 2단 규모로 조성했는데 외피는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하였다. 초석은 넓적한 자연석 초석을 놓고 기둥은 모두 각주를 사용하였는데 단면크기가 140×140㎜로 규모에 비해 매우 약한 기둥을 세웠다.

기둥 상부 도리는 납도리를 사용하고 가구는 3량 구조로 대들보 위에 짧은 동자대공을 세우고 종도리를 받게 했다. 문은 방의 경우 정면 쪽은 아래 굽널을 끼운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았고 측면에는 세살 여닫이문을 달았다. 청방간 출입문은 아래 굽널을 끼운 외여닫이 세살문을 달았다. 대청 전면에는 4짝 미서기 유리문을 달았고 뒷벽에는 쌍여닫이 판문을 달았다. 처마는 서까래만 쓴 홑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이다. 기와는 일본식 기와를 덮었으며 처마 끝에는 함석을 덧대어 처마를 연장하고 4면 모두 물받이를 설치해 놓았다.

[현황]

고천재는 남향한 강당 뒤로 묘역이 조성되어 있고 재사의 좌측에는 블록조의 관리사가, 우측에는 조립식 패널로 만들어진 창고가 세워져 있다. 마을과 떨어져 있어 관리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 주변에 건립된 지 10여 년 된 고천 양계장이 있다.

[의의와 평가]

고천재는 1970년에 쓰여진 ‘고천재사중건기’에 따르면 헌집을 헐고 그 터에 중건되었다고 하지만 헐려진 헌집이 현 고천재의 전신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보통 헌집이 있던 터를 구입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기문을 중건기라고 한 것으로 볼 때 분명히 고천재의 전신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창건 당시의 건물은 확인이 불가능하나 현대에 중건된 재실의 평면구성과 조상숭배라는 의미에서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