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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778
한자 慕軒齋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파계리
집필자 우경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모헌재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용담로 1879-122[파계리 617]지도보기
성격 재실
양식 삼량가 민도리집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1칸
문화재 지정 번호 비지정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파계리에 있는 손덕침(孫德沈)의 묘하 재사(墓下 齋舍).

[개설]

모헌재모헌 손덕침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손덕침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영천 출신 의병장이다. 자는 사원(士源), 호는 모헌(募軒), 본관은 월성(月城), 참봉 손주(孫胄)의 아들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권응수(權應銖)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천 창암(永川蒼巖)에서 왜적과 심한 교전을 하여 많은 왜병을 무찔러 왜군이 여현(礪峴)을 넘지 못하게 했다. 나이 60세에 사망하고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추증(追贈)되었다. 무덤과 정자(亭子)가 영천군 고경면 파계리에 남아 있다.

[변천]

파계보건소 뒤편 10여m 안에 있는 모헌재는 원래 주택이었으나 약 100여 년 전에 재실로 변경되었다. 현판은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에 걸었고 그전에는 현판 없이 재실로 사용되었다. 원래는 맞배집이었으나 팔작집으로 지붕형태가 변경되었고 1976년경 번외공사를 하였다.

[형태]

모헌재는 평평하고 넓은 대지에 블록담과 토석담을 혼용하여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 있고 관리사가 배치되어 있다.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팔작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평면은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온돌방 1칸을, 우측에는 온돌방 2칸을 연접시켰으며 전면에는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구조는 2단으로 구성한 시멘트 모르타르한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각주를 세워 3량가의 상부구조를 받고 있다.

기둥 상부는 아무런 꾸밈없이 장혀만 결구한 장혀수장으로 처리했다. 도리는 납도리를 사용하고 지붕은 홑처마 팔작집으로 꾸몄다. 기와는 플라스틱 기와를 덮어 마감하였다.

창호는 온돌방 전면에 여닫이 세살창을 설치하고 청방간에는 외여닫이 세살궁판문을 설치하였다. 대청 뒤쪽은 벽으로 막혀있고 앞쪽은 개방되어 있다. 벽체는 부분적으로 보수되어 회, 모래, 시멘트 모르타르 벽이 혼용되어 있다. 마루 상부와 방 내부 천정은 마감 없이 합판으로 처리하였다.

[현황]

모헌재 좌측에 직각으로 배치된 부속사는 사용을 안한 지 오래된 듯 방치되어 있고, 마당에는 농기구가 어수선하게 널려져 있다. 건물에 사용된 목부재는 오래되고 재질도 좋으나 건물을 보수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연목은 전체가 신재로 교체되었으나 굵기가 가는 것이 사용되었고 벽체는 원래 회미장 마감되었던 것을 시멘트 모르타르로 전체 보수하였다. 대청 상부 천정은 연등 천정이었던 것을 합판 천장으로 보수한 것으로 보인다.

배면에는 대나무가 건물에 근접하여 서식하고 있어 채광과 통풍을 방해하고 있다. 또한 배수로가 없어 우천 시 배수가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모헌재는 영천 지역 재사 건축의 형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사용된 목부재나 건축적 기법이 조선 시대의 법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