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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803
한자 求人齋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녹전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우경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00년대 초 - 구인재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0년 - 구인재 중수
현 소재지 구인재 - 경상북도 영천시 석동1길 32-9[녹전동 932]지도보기
성격 재사
양식 소로수장|홑처마|팔작지붕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1.5칸
소유자 강릉 유씨
관리자 강릉 유씨
문화재 지정 번호 비지정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녹전동에 있는 강릉 유씨(江陵劉氏) 시조의 묘하(墓下) 재사(齋舍).

[개설]

구인재는 1800년대 초기에 유홍렬(劉洪烈)이 선산군 인동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건립하였다고 한다. 유씨(劉氏)는 영천 지역에서는 묘금도(卯金刀) 유씨라고 더 잘 알려져 있다. 지금의 행정 구역인 녹전동의 석동·비석동·비석골이란 지명 또한 유씨와 연관이 있다고 본다.

유씨는 중국 성씨로 한나라 유방의 40세손인 유전(劉筌)이 1082년 고려에 와서 포항에 거주하면서 시작되었고, 유전의 첫째 아들인 유견규는 거창 유씨의 시조, 8세손 유국추는 배천 유씨의 시조, 12세손인 유창은 강릉 유씨의 시조가 되었다.

현재 녹전동[석동]에는 유전 부부의 묘소와 중시조 등 27위의 묘비가 조성되어 있다. 구인재는 송조병부상서(宋朝兵部尙書), 유씨동도시조(劉氏東渡始祖)를 모시며 매년 음력 10월 1일에 묘제를 지내고 있다.

[위치]

구인재는 영천시 녹전 2동으로 가기 위해 영북교 다리를 건너서 명산길을 따라 500여m 이동하면 좌측 편에 석동 1길이 나온다. 여기서 200여m 이동하면 끝자락 우측 편에 구인재가 있다.

[변천]

구인재는 1800년대 초에 유홍렬이 선산군 인동[현재 구미시 인동동]에서 영천으로 이주해 구인재를 건립했다고 전하지만 당시의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없으나 묘비를 조성한 때인 2000년에 중건된 건물로 추정된다.

[형태]

구인재는 평탄한 대지에 남동향하여 위치하고 일곽은 블록 담장으로 둘려 있다. 재사 앞쪽에는 소슬삼문 형태의 출입문이 배치되어 있다. 재사는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규모이며, 가운데 둔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방 2칸, 우측에 1칸의 방을 드린 형식이다. 방 뒤쪽으로 벽장을 설치하여 평면을 확장하였다.

정지한 대지에 높이 600㎜ 정도로 기단을 축조하고 외피는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하였다. 정면 어칸 기단 앞쪽에 2단의 계단을 설치하여 오르도록 하였다. 초석은 가공한 화강석 초석을 놓았고 기둥은 전면 퇴칸에는 원주를, 나머지는 모두 각주를 세웠다.

기둥 상부는 창방과 처마도리 장여 사이 소로를 수장하였다. 가구는 5량 구조이다. 창호는 방의 경우 정면에는 하부에 머름을 놓고 아자살 형태의 쌍여닫이문을, 측면에는 좌·우측에 외여닫이 판문을 달았다.

대청 전면에는 각 칸마다 삼분합문을 설치하여 마루방을 이루게 하였고, 청방간 출입문은 외여닫이문을 달았다. 대청 뒷벽에는 쌍여닫이 판문을 달았다. 처마는 서까래만 쓴 홑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이다.

[현황]

구인재는 평탄한 대지에 재사와 소슬삼문의 출입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당에는 전체 쇄석을 깔아 관리의 편의를 도모하고, 배면과 우측면 담장 아래 화계를 조성하였다. 건물과 사용된 목부재들은 오래되지 않은 것들로 최근에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