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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2139
한자 永川-
이칭/별칭 곳나무 싸움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집필자 문애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재현 시기/일시 2012년연표보기 - 영천 곳나무 싸움 재현
놀이 장소 곳나무 싸움 - 경상북도 영천시 완산동 영동교 둔치지도보기
성격 세시풍속|민속놀이
노는 시기 음력 정월초하루부터 이월 보름까지
관련 의례 행사 줄당기기

[정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온 편싸움 형식의 대동놀이.

[개설]

곳나무 싸움은 줄당기기의 승부가 결정된 뒤에 암줄과 숫줄을 결합하는 데 사용한 곳나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격돌하는 놀이로서, 어느 한쪽이 곳나무를 차지해 정해진 기간 동안 지켜내면 이기는 놀이이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본 놀이인 줄당기기의 승패보다 곳나무 싸움의 승패에 더 관심을 기울일 정도로 중요한 놀이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 줄당기기는 한반도의 중남부 지역에 널리 분포했던 축제의 놀이였지만 줄당기기의 도구 가운데 하나인 곳나무를 이용한 놀이를 전승한 지역은 영천과 그 인근 지역뿐이다.

곳나무 싸움은 줄당기기라는 비교적 단조로운 놀이의 한계를 넘어서 보다 신명나고 역동적인 놀이로서 의미를 지닌다. 곳나무 싸움은 줄당기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곳나무 싸움의 전개과정은 줄당기기의 준비 및 진행과정과 상당부분 겹친다. 줄을 당기는 날짜는 매년 일정한 날이 정해진 경우인 정일형, 일정한 시기에 날을 잡는 택일형, 특별한 상황 아래 행해지는 임시형이 있다.

대부분의 영천 지역에서 정월 대보름날이나 그 다음날 곳나무 싸움을 하며, 더러 정월 초하루나 2월 초하룻날 동제를 지내고 난 뒤 하는 지역도 있다. 정일형과 택일형과 같은 정기적인 줄당기기가 공동체의 일반적인 풍요와 안녕을 보장받기 위해 연행되는 것과 달리, 임시형은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행한다.

[놀이 도구 및 장소]

곳나무는 ‘곳목’, ‘곳방방이[고방망이]’, ‘고’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대개 곳나무[곳목]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지만 북부권에서는 ‘고’, 신녕권에서는 ‘곳방망이’라는 명칭을 함께 사용한다. 특징적으로 골매기나 곳망치, 줄꼬쟁이라 부르는 곳도 있다.

곳나무를 만드는 데 사용한 수종은 보통 참나무이다. 참나무는 무겁고 단단하기 때문에 가장 큰 힘이 전달되는 줄머리의 결합목으로 쓰기에 적절한 나무이다. 참나무 외에 느티나무나 소나무를 사용하기도 한다. 오동나무 같이 속이 비고 가벼운 나무는 잘 부러지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

곳나무의 크기는 줄의 규모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개 길이는 1.5m, 굵기는 15㎝ 내외다. 곳나무는 쌍줄을 당길 때 꼭 필요한 도구이기 때문에 줄을 당기기 전에 미리 마련해 둔다. 적당한 길이와 굵기를 가진 참나무를 미리 점찍어 두었다가 줄을 당기는 날 청년들이 가서 베어오는 경우가 많다. 베어 온 참나무는 양 끝을 낫으로 매끄럽게 다듬어 놓는다. 대부분 참나무를 그대로 사용하지만, 화북면 공덕리에서는 참나무의 한쪽 껍질을 깎아내고 그 위에 ‘농자천하지대보 천운지운대통(農者天下之大寶 天運地運大通)’이라는 글씨를 써넣기도 했다.

곳나무 싸움의 연행공간은 줄당기기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줄당기기는 줄을 당기는 데 불편함이 없는 곳을 선택해 일정한 공간을 이용하지만 곳나무 싸움의 연행공간은 마을 전체로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대규모로 곳나무 싸움이 벌어진 경우에는 마을 밖까지 연행 공간이 확장되기도 한다.

[놀이 방법]

줄당기기가 끝나면 곧바로 곳나무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개 줄을 당길 때는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지만 곳나무싸움은 치열한 몸싸움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장정들만 참가한다. 줄당기기가 끝나자마자 수십 명의 장정들이 곳나무로 몰려들어 서로 곳나무를 빼내기 위해 다투게 된다.

줄을 당기는 과정에서 단단히 조여진 암줄과 숫줄의 줄머리에서 곳나무를 빼내는 것이 쉽지 않았으므로 도끼로 줄머리를 자르거나 암줄과 숫줄 머리를 밀고 당긴 다음 헐거워지면 곳나무를 빼낸다. 큰줄의 경우에는 주로 도끼를 사용해 곳나무를 빼냈고 규모가 작은 골목줄의 경우에는 줄머리를 헐겁게 만드는 방법을 사용했다.

어느 한 명이 곳나무를 빼내 차지하고 있으면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어 곳나무를 빼앗으려 했다. 서로 뺏고 빼앗기는 혼전이 지속되는 동안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몰려든 인파에 끼여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놀이가 격렬했던 만큼 부상자가 속출할 때도 있다.

줄머리 근처에서 벌어지는 혼전이 끝나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이 곳나무를 들고 도망치기 시작했을 때이다. 이때부터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전개된다. 자기편이 곳나무를 차지하고 있으면 상대편이 추격하지 못하도록 몸으로 막아내고, 추격하는 사람들은 그 방어선을 돌파해야만 곳나무를 가진 사람을 쫓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양편 사이에 격렬한 육탄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놀이가 역동적인 데다가 놀이의 공간이 광범위했기 때문에 마을마다 승부를 결정짓는 기준을 따로 마련했다.

① 상대편이 곳나무를 찾지 못해 승부를 포기할 경우

② 정해진 시간까지 곳나무를 숨길 경우

③ 정해진 장소까지 곳나무를 옮길 경우

④ 상대편이 곳나무를 찾기 힘든 곳으로 곳나무를 옮길 경우

⑤ 곳나무를 차지한 사람이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갈 경우

곳나무 싸움의 승부 결정은 대개 ①의 방식을 택하고 있지만, 상대편이 승부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①과 ②의 방법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다음날 동이 틀 무렵까지로 시간제한을 두는 게 보통이다.

③의 경우 곳나무를 차지한 사람이 미리 정해진 집으로 곳나무를 옮기는 경우이다. 대부분 아들이 없는 집에서 곳나무를 부탁하기 때문에 상대편도 이 사실을 알고 더 이상 쫓지 않았다. 더러는 마을에서 위세가 높은 양반 집으로 곳나무를 갖고 들어가기도 했는데, 이 경우 놀이꾼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승부를 포기했다고 한다. ④의 사례는 곳나무를 우물이나, 강, 저수지 등에 던져 넣는다. 곳나무싸움이 벌어지는 때는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아서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⑤는 곳나무를 차지한 사람이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간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곳나무를 차지하기 위해 추격하던 사람들이 승부를 포기해야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곳나무는 복과 길함을 상징한다. 따라서 여러 마을이 참여하는 경우는 곳나무를 빼앗기는 것이 곧 자기 마을의 복을 뺏기는 것으로 인식한다. 곳나무를 일단 확보한 뒤에는 마을 차원에서 곳나무를 공유하기 보다는 곳나무의 효험이 필요한 특정 집단에서 곳나무를 보관하고 처리하게 된다.

대부분의 마을에서 곳나무를 차지하면 득남을 한다거나 집안에 재수가 있다는 등의 속신을 믿어왔다. 즉 줄을 당기고 난 뒤 그 줄을 공동체 구성원이 공유하는데 비해 곳나무는 특정 집안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공동체 차원에서 놀이에 참가한 모든 이들이 각자의 풍요와 안녕을 위해 줄을 사용하는 줄당기기와 구별되는 측면이다.

영천 지역에서 곳나무는 득남의 상징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고경면 상덕리에서는 곳나무를 토막내 삶은 물을 부녀자가 마시면 득남할 수 있다고 여겼다. 삼귀리에서는 곳나무를 아랫목에 아이 재우듯이 눕혀 놓은 뒤 부부관계를 맺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여겼다. 대천리, 공덕리, 구전리 등에서는 부녀자가 하룻밤 동안 곳나무를 아이처럼 껴안고 자면 득남한다는 속신이 있다. 이처럼 부녀자와 가까이 두고 생활하는 것은 곳나무를 남성의 성기로 인식하는 유감주술적인 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경면 상리리의 경우에는 곳나무가 집안으로 들어오면 먼저 부녀자가 엉덩이로 깔고 앉기도 했다고 한다. 신녕면 연정리의 경우 곳나무가 곧 남근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또한 곳나무가 집안에 있으면 재수가 좋아져 살림이 늘어난다고 믿는다. 이 때문에 새로 집을 지었거나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미리 곳나무를 가져다 줄 것을 놀이꾼들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실제로 공덕리에서는 마을에서 잘 살기로 소문난 집에서 새로 집을 짓기 위해 가옥을 허물었는데, 이 때 수십 개의 곳나무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그 집이 잘 살았던 게 곳나무를 많이 차지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또 곳나무를 산 사람이 우연히 참가한 경품행사에서 당첨되어 김치냉장고를 얻은 게 곳나무의 효험이라고 믿었다. 이처럼 곳나무는 득남과 재수, 길함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황]

곳나무 싸움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전승력이 약화되었다. 해방 이후 일부 지역에서 다시 전승력을 확보했지만, 6·25를 겪으면서 대부분의 마을에서 전승이 중단되었다. 일부 마을에서 최근까지 곳나무 싸움을 전승하고 있지만 특별한 사례에 해당한다. 영천시 오산리에서는 2006년까지 연행되었고, 공덕리에서는 3년 주기로 곳나무 싸움을 벌이고 있다.

1980년대에 이르러 영천 지역의 역사와 전통문화연구를 위해 결성한 ‘향토사연구회’에서 곳나무 싸움에 관심을 가지고, 재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96년부터 영천시 청년연합회와 영천전자고등학교의 주도로 각종 지역 행사에서 곳나무 싸움을 재현해 오고 있다. 2002년에는 ‘곳나무싸움보존위원회’가 결성되었다. 2012년 정월 대보름날에도 영동교 둔치에서 곳나무 싸움 재현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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