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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2141
한자 石戰
이칭/별칭 편전(便戰),석전놀이,돌팔매놀이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집필자 문애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속놀이
노는 시기 음력 정월 대보름

[정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마을 단위로 편을 갈라 돌을 던져 승부를 가리는 집단 놀이.

[개설]

정월 대보름을 위시한 명절의 세시풍속 놀이로 널리 행해졌으나 원래는 군사훈련적 성격도 지닌다. 과격한 싸움이며 우리 민속놀이 중에서 민중들의 힘찬 기세를 잘 드러내주는 전투적인 놀이이다.

[연원]

『당서(唐書)』 고구려전에는 일찍이 고구려에서 매년 정초에 이 싸움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 시대에도 척석군(擲石軍)이라 해서 돌팔매 부대를 두었던 기록이 있다. 『고려사(高麗史)』 신돈전에 "우리나라 풍속에 수릿날 사람들이 거리를 떼지어 다니며 좌우로 편을 갈라 돌팔매질로 승부를 겨루는 것을 석전이라고 한다"는 기록으로 보아 조선 후기의 놀이 기록들과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은 이후 조선시대에도 계속 나온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보름날이면 만리현 위에서 숭례문·동대문·서대문 등 삼문 밖과 아현 사람들이 편을 갈라 몽둥이를 들거나 또는 돌을 던지면서 편싸움을 한다. 이 싸움은 한쪽이 져서 달아날 때까지 하는데, 문 밖이 이기면 경기도만 풍년이 들고, 아현 쪽이 이기면 나머지 지역이 풍년이 든다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싸움의 강도가 매우 심했기 때문에 머리가 깨지고 팔이 부러져 죽게 되어도 후회하지 않았다 한다. 이 놀이는 조선 후기를 기점으로 사라지기 시작하여 일제 강점기에 완전히 사라졌다. 싸움의 승패를 가지고 농사의 길흉을 점쳤던 점세적 성격이 배어 있는 놀이이다.

[놀이 도구 및 장소]

보름날 혹은 그 이튿날까지 벌어지는 석전은 강을 사이에 두고 이웃동네와 돌을 던져서 밀려 도망가는 동네가 패하게 된다. 때로는 산등성이를 사이에 두고 같은 동네에서도 윗동네와 아랫동네가 겨루는 편싸움인데 많은 사람들이 돌팔매에 맞아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현황]

영천시 금호읍 도남동의 경우를 보면 1970년대까지만 해도 북안천을 사이에 두고 영천시 도동과 다투었는데 때로는 장년에서 어린 아이까지 동원되기도 했으며, 산등성이를 사이에 두고 영천시 본촌동과 겨루었다고 한다.

원래 돌을 던져 싸웠으나 후대로 갈수록 쇠퇴해져 그 시늉만 했는데 돌 대신 벼 뿌리나 흙 덩이를 던지기도 했다. 정월 보름 뿐 아니라 눈이 내리는 겨울철에도 눈 뭉치를 뭉쳐 서로 편을 겨루기도 했으며 주로 아이들끼리 윗동네 아랫동네로 편을 나누어 하는 어린이 놀이로 계승 및 변천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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