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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30002
한자 永川銀海寺念佛往生捷徑圖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청통로 951[치일리 47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미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750년연표보기 -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15년 3월 4일연표보기 -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 보물 제1857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 보물 재지정
현 소장처 은해사 성보 박물관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청통로 951[치일리 479]
성격 불화
소유자 영지사
관리자 영지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 은해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화.

[개설]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는 원래 은해사 심검당에 구장(舊藏)되었던 것으로 도난당하였다가 회수되었는데, 현재 화기는 남아 있지 않지만 도난 이전 조사 시에 ‘건륭(乾隆) 15년’이라는 연대가 남아 있던 것이 확인되어 1750년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 극락왕생의 모습을 그린 불화가 20여 점 남아 있는데,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는 현존하는 조선 후기 극락왕생도 중 가장 이른 예라 할 수 있다. 염불 왕생 첩경도는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기록된 극락왕생의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2015년 3월 4일 보물 제185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는 세로 160㎝, 가로 306㎝로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렸다. 구성은 화면 중간에 그려진 난간을 기준으로 화면을 상하로 나눌 수 있다. 윗면 중앙에 배치한 10층 칠보 누각(七寶樓閣)을 중심으로 향 왼쪽에 잡색지조(雜色之鳥)와 칠중 행수(七重行樹), 아랫면 오른쪽부터 차례로 여래의 연대(蓮臺), 칠보지(七寶池), 팔공덕수(八功德水), 연화지(蓮花池)를 그리고, 다시 윗면 오른쪽에 왕생자의 금은 연대(金銀蓮臺)와 풍악 시중(風樂侍衆)을 배치하였다.

화면의 아랫면에 길게 걸쳐 있는 연화지에는 왼쪽에 구품 왕생자가 구품 연못에서 연화 화생하고 있으며, 오른쪽에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선수(船首)와 선미(船尾)에 서서 왕생자를 가득 실은 큰 돛의 용선을 연지로 인도해 들어오고 있다. 구품 왕생자는 난간 위에 앉은 불보살의 손에서 나오는 광선을 통하여 접인을 받고 있으며, 용선 왕생자들은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아미타불과 권속들의 접인을 받고 있다. 이상의 각 도상에는 방제(旁題)가 있어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가 ‘관경 십육관 변상도’의 변모를 보여 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화면 방향에 따라 가로로 간략하게 배치된 관경 십육관 변상도 도상과 용선 접인(龍船接引) 장면을 한 화면에 융합하였으며, 화면의 왼쪽 아래와 오른쪽 위에 커다란 연대를 그려 독특한 구성을 이룬다. 또한 관경 변상도 일부에 나타나던 구품 연못과 구품 왕생자가 시각적으로 더욱 부각되고, 구품 왕생자의 방제가 각각 명시되어 19세기 이후 유행하는 극락 구품도의 시원 형태를 보인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특히 화기에 보이는 작품의 제목처럼 구품 왕생자나 용선 왕생자 모두 극락왕생을 위한 가장 쉬운 방편인 염불행(念佛行)을 통하여 왕생하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조선 후기 널리 유행한 염불 신앙을 반영하고 있다.

[특징]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는 관상(觀想)을 통한 막연한 극락왕생에서 벗어나 반야용선(般若龍船)[극락정토로 중생을 건네주는 배]을 타고 극락으로 가는 실현 가능한 극락왕생을 염원하던 중생들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관경 십육관 변상도 도상을 간략하게 표현하고 용선 접인 장면을 한 화면에 융합한 구도가 특징인데, 화면의 왼쪽 아래와 오른쪽 위에 커다란 연대를 그린 독특한 구성이 돋보인다. 전체적으로 색이 바래서 어두운 편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채색이 잘 남아 있으며 보존 상태도 매우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영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는 극락의 장엄한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불화로, 조선 전기와 후기의 극락왕생 불화를 연결하는 중요한 사례로 불교 회화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작품으로 꼽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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