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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044
한자 衣生活
이칭/별칭 의복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이은정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의복과 장신구를 착용하는 생활.

[개설]

의·식·주생활 중에서 한국인의 의생활만큼 근대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분야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조선조 말에 단행된 의제 개혁으로 시작된 복식의 변화는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19세기 말 개항과 더불어 서양 복식이 수용되면서 일제 강점기 의생활은 전통 복식과 서양 복식 외에 일본식이 혼재되어 상당히 이질적인 양상이 지속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 속에서 유림(儒林)들이 이러한 세태에 반발하면서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세력과 개혁 세력 사이에서 한복과 양복이 혼용되는 이중구조가 나타났다. 일제 강점기에 실시한 의복 개량 운동, 이를테면, 백의(白衣) 금지, 장의 폐지, 서양복과 일본 옷, 국민복, 몸뻬 등의 착용 결과 한복은 점차 의례복으로 정착되기 시작하였다. 또, 6·25 전란과 급격한 산업화와 더불어 의생활 또한 서양식 기성복화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져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내용]

의복은 용도에 따라 크게 일상복과 의례복으로 나누어 볼 수 있고, 서양 복식화된 이러한 복식 형태는 경상북도 영천시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1. 일상복

일상복은 일상생활 속에서 남녀노소가 착용하는 복식으로서,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여 계절에 맞게 여름옷은 모시나 삼베를 이용하되 홑으로 하고, 겨울에는 명주나 무명을 겹이나 솜옷으로 하였다. 여름에는 대나무로 만든 손토수[토시]를 이용하여 더위를 이겨 내고, 겨울에는 솜이나 털로 만든 손토수를 끼고, 머리와 귀, 얼굴에 는 방한 용구를 썼다.

1895년(고종 32) 의제 개혁의 일환으로 실시된 단발령(斷髮令)은 한국의 의생활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기혼 남자들이 망건에다가 탕건이나 정자관, 갓을 쓰다가 단발령 이후는 서양식 모자를 쓰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기하에서 복식의 변화에서 특징적인 것 중의 하나는 여성이 ‘몸뻬’를 입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1940년대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여성 인력 동원을 목적으로 간편한 복장을 요구하는 것에 따른 것이다.

서양의 기성복이 한국 의생활에 본격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한 것은 6·25 이후 군복을 수선하여 입거나 군복에 염색을 하여 입으면서부터 서양식 바지와 셔츠가 일상복이 되었다.

그리고 1960~1970년대 산업화를 통해 화학섬유가 발달됨에 따라 대량으로 기성복이 생산, 소비되기 시작하였다. 1963년에 국내 합성 섬유로 ‘코오롱’과 ‘토프론’이라는 상품명으로 나일론 생산이 시작되어 천연섬유의 단점을 보완하는 측면에서 널리 이용되었다.

1966년에는 월남 파병을 계기로 여성들에게는 일명 ‘월남치마’라고 하는 긴 통치마가 유행한 적이 있고, 겨울에는 누비로 된 긴치마를 입기도 했다. 이 치마는 시골이나 도시 어디서나 외출복 혹은 일상복으로 매우 각광을 받았다.

1970년대는 양장과 양복의 맞춤시대이기도 했다. 반면, 양장이 완전하게 일상복으로 자리 잡고, 한복은 일상복에서 퇴조하여 의례복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 시대에는 기성복 구입이 증가하였고, 옷 구매 행태는 재래시장 옷과 맞춤복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블루진의 전성시대가 시작되었다.

1980년대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인해 라이프 스타일이 다양해지고 본격적인 캐주얼 시대가 시작되었다. 1990년대 탈유행의 시대, 개성의 시대를 지나 21세기인 오늘날에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이 유행이 된 것처럼, 유행의 주기가 상당히 짧아짐과 동시에 기능성 옷이 발달하였다.

현재 영천의 지역민들은 서양식의 기성복을 착용하고 있으며, 남녀노소에 따라 의류구매처가 구분될 수 있는데, 노인일수록 재래시장을 선호하며 중장년 의류는 브랜드 옷가게를 이용하며, 청소년·어린이 의류는 대형 마트 혹은 인터넷을 통하여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2000년 이후부터는, 전국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중장년층과 청소년 의류는 등산복과 같은 기능성 의류가 일상복을 대체할 때가 압도적이다. 영천시에도 대규모의 고가 전문 등산복 매장이 2010년 이후에 여러 군데 들어섰다.

2. 의례복

의례복은 의례 때 특별히 갖추는 예복을 말하는데, 한국의 큰 의례는 관혼상제로서, 관례(冠禮)는 조선 후기 단발령에 의해 그 의미가 거의 약화되었다. 가장 화려한 치레를 하는 의례는 혼례(婚禮)이며, 사람은 일생에 두 번 큰 호사를 하게 되는데 혼례와 수의치레라고 한다. 의례복은 크게 출생 의례복, 혼례복, 상복, 수의 정도로 구분할 수가 있다.

1) 출생 의례복

출생 의례는 주로 출생 직후부터 삼칠일, 백일, 돌까지 거치는 동안의 의례를 말하며, 출생 의례복은 이때 갖춰 입히는 옷으로 가정 형편이나 성별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삼칠일 옷은 출생 후 3일부터 21일 동안 입히는 옷이지만, 대개 백일까지 입힌다.

영천 지역에서는 ‘배냇저고리’라고 하며, 옷감은 부드러운 융이나 면으로 만든다. 모양은 한복저고리 같지만, 깃이나 섶은 달지 않고 약식으로 간단하게 만들며 옷고름은 장수하라고 실로 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늘날에는 출산 준비물에 배냇저고리가 포함되어 있고, 엄마가 될 산모가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보통이다. 태어날 아이를 위해 배냇저고리를 직접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예로부터 신생아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는 소중하게 다루어지는데, 영천시 주민 이은정[여, 38세]은 대학 입학 시험인 학력고사를 치르러 갈 때 가방에 배냇저고리를 넣어 갔다고 한다. 시험이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배냇저고리가 운수가 있다고 믿는 할머니의 권유 때문이었다. 이처럼 배냇저고리는 예로부터 과거 보러 갈 때, 전쟁터에 나갈 때 지참하던 의류였던 것이다.

출생 의례복으로서 백일복은 백일에 백색 옷감으로 백 줄을 누벼 만든 누비옷을 입히면 백 살까지 산다고 했다. 이때 배냇저고리에는 없었던 깃과 섶을 제대로 갖추어 단다. 돌 전까지는 주로 흰색 옷을 입혔지만, 돌 때부터는 색깔 있는 옷을 입힌다. 저고리나 두루마기에 옷고름을 빨강이나 파란색으로 허리를 한 바퀴 돌려 맬 수 있게 했는데, 그것을 ‘돌띠’라고 하였다.

현재 영천 지역에서도 아이가 돌이 되어 돌잔치를 하는 경우에는 돌복을 입히고, 아이의 부모도 함께 같은 종류의 한복으로 갖춰 입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돌잔치를 위한 한복의 경우 구매보다는 대여를 선호하는 편이다.

2) 혼례복

전통적인 혼례복의 경우는, 신랑은 사모관대(紗帽冠帶)를 하고, 신부는 원삼(圓衫)에다가 족두리 차림이 기본적인 의복이었다. 혼례 옷차림은 가장 안에 모시 속적삼을 입고, 분홍·노랑·연두삼회장저고리를 차례로 겹쳐 입고, 치마는 속옷바지·단속곳·청치마·홍치마를 입고, 그 위에 원삼을 입었다. 신부가 모시 속적삼을 입는 이유는 “시집살이가 시원하라”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오늘날 혼례에서는 전통 혼례식을 제외하고는 대개가 서양식 결혼식을 선호한다. 물론, 한국적인 혼례식의 풍습이 폐백(幣帛)이라는 절차 속에 함축적으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혼례식의 큰 틀은 서양식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신부는 웨딩드레스에 면사포, 신랑은 턱시도를 입고 예식을 올린다. 영천시 성내동 이세희[남, 69세]는 1973년에 영천의 작은 예식장에서 서양식 결혼식을 올렸다고 하며, 이때만 하더라도 친구들은 대부분 전통 혼례를 하던 시기였다고 한다.

3) 상복

평생의례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격식을 차려야 하는 의례가 상례인데, 상복(喪服)을 갖추는 일은 효(孝)의 근본이라 여겼다.

남자 상주는 주로 굵은 삼베로 만든 굴건제복을 입고 짚신을 신고, 손자와 사위는 건(巾)과 중단(中單)을 갖추고 행전을 찬다. 여자 상주는 삼베 치마저고리에 중단 입고 허리에 요질을 매고 머리에 베헝겊에 수질을 쓰는 것이 전통적인 상복 차림이었다. 그리고 남녀 상주는 지팡이를 짚는데, 부친상에는 대나무, 모친상에는 오동나무나 버드나무를 짚었다.

오늘날에는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상례 혹은 장례의 경우 상조회 중심으로 이루지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 상조회를 통해 상복을 공급받는다. 기독교나 천주교 집안의 경우는 굴건제복보다는 남자는 검은 양복, 여자는 검은 개량 치마저고리를 입는 편이다.

4) 수의

수의(壽衣)는 돌아가신 분이 입는 옷을 말하는데, 저승에서 입을 옷이라 여겨 최상품으로 마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남자는 도포, 여자는 혼례복과 같이 갖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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