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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670
한자 巨洞寺大雄殿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사곡길 77-81[보현리 168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조선 초기 - 거동사대웅전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79년 12월 18일연표보기 - 거동사대웅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7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거동사대웅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5년 - 거동사대웅전과 요사 보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5년 - 거동사대웅전 단청, 벽체, 창호 보수
현 소재지 거동사대웅전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사곡길 77-81[보현리 1683]지도보기
성격 불전
양식 다포계 맞배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거동사
관리자 거동사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보현리 거동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개설]

거동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 말사이다. 신라 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라 전하나 분명한 기록이 없고, 조선 시대 전·후기 문헌에도 사찰명이 등재되어 있지 않아 창건 등 사력(寺歷)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다만 현존 경내에 조선 후기의 건물로 추정되는 거동사 주 불전인 대웅전을 비롯해 요사채, 승방 등이 단촐하게 구성되어 있다. 대웅전도 건립 이후에 수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치]

거동사로 가는 길은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에서 가는 길과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에서 가는 길이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에서 가는 길은 면내에서 35번 국도[천문로]를 타고 가다 용소리에서 별빛로로 갈아 탄 뒤 보현산 천문대가 있는 정각리를 지나쳐 3.7㎞ 가량 동쪽으로 가면 보현 3리 보현마을이 나온다. 이 보현마을 안길인 사곡길로 다시 1.5㎞ 가량 북쪽으로 올라간 절골 북쪽 산 중턱에 거동사가 있다.

한편 자양면에서 가는 길은 경상북도 영천 시내의 조교 삼거리에서 69번 지방도인 포은로를 타고 북쪽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영천댐, 자양면을 차례로 지나 충효 2리 충효휴게소에서 하거천을 따라 개설된 도로로 갈아 타 5.3㎞ 가량 가면 보현 3리 보현마을이 나온다.

[변천]

거동사는 삼국 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나 조선 초기의 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사찰명이 등재되어 있지 않고, 1669년(현종 10) 민주면(閔周冕)이 간행한 『동경잡기』에 ‘거동사지가 죽장현의 서남 15리에 있으며 그 흥폐 연대는 알 수 없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편 포항 신광면 법광사 석가불사리탑 중수비[1750년(건융 15) 신유한(申維翰) 찬(撰)]의 조연(助緣)에 거동사가 표기되어 있어 1750년 경에는 사찰이 존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 조선 영조 때 편찬된 『가람고(伽藍考)』에 ‘경상북도 경주군 서쪽 110리에 있다’ 라는 기록이 있고, 『태고사 사법(太古寺寺法)』에는 ‘경상북도 영천군 자양면 보현산에 있는데, 대본산 기림사의 말사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거동사 관련 기록을 종합하면 창건은 언제인지 알 수 없고, 18세기 경에 사찰이 존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찰 아래의 마을까지 사찰 땅으로 많은 건물이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확인할 길이 없다. 또 1797년(정조 21) 중창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 당시에 대웅전 등이 크게 중수 및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95년 경내 건물을 보수한 바 있고, 최근에 대웅전 맞은편에 있던 부도군을 사찰 진입로 초입으로 이전해 새로이 단장했다.

[형태]

거동사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에 다포계 맞배집으로 경내의 요사채와 승방 뒤편의 한 단 높은 지대에 남향하고 있다. 기단은 잘 치석된 장대석 한 단을 놓고, 그 위에 자연석 1~2단으로 마감한 자연석을 가공한 석기단이다. 기단 전면 중앙에는 자연석의 소맷돌이 있는 넉 단의 돌계단을 두었고, 좌측면에도 일반 출입용의 돌계단이 있다.

구체부는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두리 기둥을 세운 뒤 벽체와 창호로 마감했다. 창호는 전·후면 3칸 및 양 측면 전퇴 칸에 각기 설치되어 있다. 전면 창호는 모두 솟을 꽂살문에 2단 굽널을 댄 분합들문으로 어칸은 네 짝이고, 양 협칸은 세 짝이다. 후면은 어칸에만 네 짝의 굽널세살들문이고, 양 협칸에는 쌍여닫이 굽널세살문이다. 양 측면 전퇴칸에는 주 출입용으로 사용하는 외여닫이 굽널세살문이 달려 있다.

주상부는 창방·평방을 결구하고 그 위에 내·외 3출목의 다포를 꾸몄다. 공간포는 전·후면 각 칸 공히 2조씩으로 구성했다. 제공의 형태는 전·후면, 외·내단간에 차이가 있다. 전면 외단은 3제공까지 앙서+하부조각, 4제공은 용두형, 5제공은 봉두형으로 장엄하게 장식했다.

한편 후면 외단과 내단은 3제공까지 모두 교두형으로 간결하게 처리했고, 4제공 외단은 삼분두형이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건물 전면 양 우주 상의 귀포에 놓인 주심 소첨차·주심 대첨차 및 주심장혀의 외단을 화려한 연화문으로 조각 장식한 점이다. 역시 조선 후기의 장식적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구조는 내부가 후퇴 1고주 7량가, 양 측면은 전·후퇴 2고주 7량가이다. 이 건물에 가구법에서 주목할 것은 단면 원형의 동자주를 중대공으로 사용한 점, 대량 위에 재차 전·후면 주심도리를 받는 곡선의 받침재가 내단의 중대공과 결구시킨 점 등이다. 내부 바닥은 우물마루로 처리했고, 이주법으로 불단을 설치했다.

불단에는 가운데 주존불인 석가모니불과 보현, 문수 좌우 협신불, 후불탱을 배치했고, 그 측벽으로는 지장보살, 도명존자, 무독귀왕, 신중탱이 봉안되어있다. 불단 위 천정에는 간결한 닷집이 설치되어 있다.

천정은 중도리 사이에만 화려한 소란반자로 장식했고, 전면 중도리~내목도리 사이에는 우물반자로 처리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이은 겹처마 맞배집이며, 양측면에는 방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현황]

거동사보현산 남쪽 기슭의 제법 가파른 산비탈을 계단식으로 대지를 조성한 뒤 주 불전인 대웅전을 비롯해 승방, 요사채, 산신각, 해우소의 건물과 부도군이 배치되어 있다. 부도군은 거동사의 주차장으로 들어서기 전 우측 편에 3기[가운데가 추월당 상휘대사, 우측은 월암당 일휘대사, 좌측은 미상]가 있다. 건물은 여러 단으로 조성된 대지의 석축 위에 건축되었다. 주차장에서 올라오면 한 단 높은 석축 위에 승방[남향, 2×1.5칸, 맞배 기와집]과 요사채[서향, 4×3칸, 맞배 기와집]가 사역 가장자리에 배치되어 있고, 그 중앙 뒤편의 한단 높은 곳에 대웅전이 자리한다. 대웅전 뒤편에는 산신각[남향, 3×1칸, 맞배집]이 있다. 1979년 12월 18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거동사는 조선 후기 다포계(多包系) 불전의 일반적인 특성을 잘 반영하는 건물이다. 하지만 공포 전·후면의 가공 및 세부 수법의 차이, 전면 귀포의 주심 소첨차·주심 대첨차 및 주심장혀의 외단을 화려한 연화 조각으로 장식한 점, 내고주를 이주법으로 채택해 내부 공간 활용을 극대화한 점 등 조선 후기의 주요한 불전적 특성이 잘 반영된 예라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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