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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763
한자 東麟閣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포은로 964-86[삼매리 281-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태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85년연표보기 - 동린각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787년 - 동린각 중건
이전 시기/일시 1960년 - 동린각 이건
문화재 지정 일시 1975년 8월 18일연표보기 - 동린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
이전 시기/일시 1976년 7월 - 동린각 이건
현 소재지 동린각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포은로 964-86[삼매리 281-5]지도보기
원소재지 동린각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노항리 지도보기
성격 사당
양식 이익공|겹처마|팔작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김임득
관리자 김임득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7호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포은로에 있는 이순신김완을 향사하기 위해 세운 사당.

[개설]

이순신의 부장인 김완(金完)[1546~1607]의 본관은 경주, 자는 언수(彦粹), 호는 사성당(思誠堂)으로, 김응생(金應生)의 셋째 아들이다. 1577년 무과에 급제해 1589년 사도첨사(蛇島僉使)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한산도(閑山島)에서 적선을 격파한 공로로 절충 장군(折衝將軍)으로 승진되었고, 통제사(統制使) 이순신의 장계로 한산도 조방장(助防將)으로 승진되었다.

1597년 복병도장(伏兵都將)이 되어 도장포(道莊浦)와 다대포(多大浦)의 적을 격파하였고, 동년 7월 부산 앞바다에서 패한 뒤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되었으나 1598년 1월 탈출했다. 이 사실을 안 선조는 ‘해동소무(海東蘇武)’라는 사액과 함께 함안 군수의 벼슬을 내렸다. 저서로는 『해소실기(海蘇實記)』가 있고, 묘소는 자양면 노항리에 있으며, 1606년 선무원종일등공신에 올랐다.

[위치]

동린각(東麟閣)은 삼매1리 개평들로 영천댐 하부에 해당한다. 임고면 소재지에서 평천교를 지나면 좌측으로 삼래리 반곡마을이 나온다. 이 마을에서 자호천을 건너면 개평들에 자양 서당과 함께 동린각이 있다.

[변천]

동린각김완의 고향인 영천시 자양면 노항리에 1785년 ‘해동의 기린’이란 의미로 ‘동린각(東麟閣)’을 세워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영정을 모시고 향사를 지냈다. 그 후 화재로 동린각이 소실되어 1787년 중건했다.

세월이 흘러 퇴락한 것을 1960년 자양면 성곡리로 옮겨 지으면서 수리했고, 영천댐 건설로 또다시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1975년 8월 18일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최근 외삼문, 내삼문·사당·사적비 등을 건립해 정비되어 있다.

[형태]

동린각은 삼매1리 개평들 언덕에 자호천을 내려다보며 북서향하고 있다. 세로로 긴 장방형 토석담의 서편 담장에 세운 외삼문을 들어가면 정면에 내삼문과 사당이 있고 좌측으로 동린각이 사당과 직교로 배치되어 있다.

동린각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독특한 평면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가운데 네 칸 대청을 가로열 반으로 나누어 마루방으로 꾸미고 신위와 영정을 모셨다[현 별도의 사당에 모심].

대청 좌우에는 전후 두 칸 온돌방을 드린 뒤 앞쪽으로 한 칸의 퇴 칸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이다. 건물의 측면에는 쪽마루를 두어 동선의 편의를 도모했다. 창호는 마루방 전면에 사분합문을 달고 청방 간에는 삼분합문을 달았다. 방의 전면에는 쌍여닫이 세살창을 달고 측면에는 외여닫이 세살창을 쌍으로 달았다. 특히 마루방 배면 상부에는 교살창을 두었다.

구조는 낮은 두벌대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앉히고 사각, 팔각, 원형 등 세 종류의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 상부는 초익공으로 처리했다. 대들보 위는 간략한 파련대공으로 꾸며 오량가의 가구를 완성해 격조있게 했다.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한식 기와를 이엇다.

동린각과 직교 배치된 곳에는 ‘유심문(由心門)’이란 내삼문을 통해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화려한 단청을 한 ‘충의사(忠義祠)’란 사당이 있다.

[현황]

동린각 좌측에는 1976년 영천댐 건설로 옮겨진 자양 서당이 있고, 자양 서당동린각 앞마당에는 자양 서당에 봉안된 김응생의 사적비와 ‘동린각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동린각은 1976년 이건 당시 일각문을 통해 사당 마당으로 통했으나 현재 일각문이 있던 자리에 외삼문을 두고 내부에 내삼문과 별도의 사당 건물을 건립했다. 마당에는 잔디를 식재했고 외삼문에서 내삼문 및 동린각 정면 기단에 이르기까지 박석을 깔아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동린각 대청 뒷 열의 마루방에 이순신김완의 신위와 영정을 모셨으나 현재 별도의 사당에 모셨다. 동린각 정면 상부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쓴 ‘동린각(東麟閣)’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건물 배면에도 동린각의 현판이 걸려 있다. 또 건물 내부 우 측방 상부에는 ‘분충재(奮忠齋)’, 좌 측방 상부에는 ‘사성당(思誠堂)’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매년 4월에 후손들에 의해 추모재가 열리고 있다.

[의의와 평가]

동린각 건물은 건립 후 화재와 이건 등으로 인해 당시의 모습은 잘 알 수 없지만 재실 겸 사당을 합친 성격의 건물 평면이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