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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940
한자 龍宮全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집필자 전민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426년 - 전영창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510년 - 전영창 사망
본관 용궁 -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세거|집성지 세거지 - 경상북도 영천시 녹전동[조동]
세거|집성지 세거지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강회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세거지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약남리 수남마을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세거지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삼귀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세거지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오길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세거지 - 경상북도 영천시 도림동
세거|집성지 세거지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냉천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전섭(全聶)
입향 시조 전영창(全永昌)

[정의]

전섭(全聶)을 시조로 하고 전영창(全永昌)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연원]

『용궁전씨우천공파세보(龍宮全氏寓川公派世譜)』 서문을 보면, 백제 개국 당시 온조왕을 도와 십제공신(十濟功臣)이 된 환성군(歡城君) 전섭이 도시조로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정선(旌善)[강원도 정선군], 천안(天安)[충청남도 천안시], 옥천(沃川)[충청북도 옥천군], 용궁(龍宮)[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나주(羅州)[전라남도 나주시], 경주(慶州)[경상북도 경주시], 옥산(玉山), 성산(星山)[경상북도 성주군], 죽산(竹山), 완산(完山), 감천(甘泉)[경상북도 김천시], 평강(平康), 함창(咸昌)[경상북도 상주시], 팔거(八莒)[경상북도 칠곡군, 대구광역시 북구 읍내동], 부여(夫餘)[충청남도 부여시] 등 18개 본으로 분파된다.

용궁 전씨 시조는 도시조인 전섭으로부터 27세인 금오위대장군(金吾衛大將軍) 전라도병마사(全羅道兵馬使) 전공렬(全公烈)의 둘째 아들 전방숙(全邦淑)이다. 전방숙은 고려조에 문과에 급제하고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냈다. 또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에 봉해짐으로 정선에서 분관되어 용궁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영천 입향조는 용궁 전씨 10세(世)인 봉상시직장(奉常寺直長) 전영창(全永昌)이다.

[입향 경위]

봉상시직장을 역임한 전영창이 영천에 입향한 동기는 불분명하다. 다만 중앙 정치에 염증을 느껴 향리로 낙향하였다가 1472(성종 3)에 찬의(贊儀)에 제수되자 나아가지 않고 처가 동네로 은둔한 것으로 추측된다.

전영창의 장인은 경주 김씨 김함(金緘)으로 세종 조에 문신으로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와 형조정랑(刑曹正郞), 상주판관(尙州判官) 등을 역임하며 많은 치적을 쌓았다. 특히 경서와 예학을 깊이 연구했고 영천 지역의 큰 문중이었기에 사위인 전영창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황]

입향 이후 인물을 향지(鄕誌) 『영양지(永陽誌)』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용궁 전씨는 무과(武科)로 봉화현감(奉化縣監)인 전삼익(全三益), 무과(武科)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인 전삼달(全三達), 문행(文行)이 뛰어났던 전삼성(全三省), 무과(武科)로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인 전존성(全尊性), 무과(武科)로 만호(萬戶)인 전안성(全安性), 무과(武科)로 훈련원주부(訓練院主簿)인 전내성(全乃性), 문행(文行)이 뛰어났던 전오익(全五益), 무과(武科)로 만호(萬戶)인 전이돈(全爾敦), 무과(武科)로 판관(判官)인 전이원(全爾垣), 문행(文行)이 뛰어났던 전오행(全五行)과 전근천(全近天), 무과(武科)로 제주판관(濟州判官)인 전우성(全宇成), 문과(文科)로 예조정랑(禮曹正郞)인 전희룡(全熙龍), 부호군(副護軍) 전우필(全宇弼), 증(贈) 군자감정(軍資監正) 전희서(全熙瑞), 수직(壽職) 통정대부(通政大夫) 전상규(全相奎), 한성판윤(漢城判尹) 전호규(全琥奎), 정조 때 무과에 급제한 전상권(全尙權), 수직(壽職) 통정대부(通政大夫) 전치규(全致奎), 수직(壽職) 통정대부(通政大夫) 전병수(全秉秀), 수직(壽職) 통정대부(通政大夫) 전재룡(全在龍), 가선대부(嘉善大夫) 전병해(全秉海), 증(贈) 돈녕도정(敦寧都正) 전병천(全秉天), 수직(壽職) 통정대부(通政大夫) 전만영(全晩永), 문행(文行)으로 이름난 전기열(全箕列) 등이 있다.

용궁 전씨의 집성촌은 주로 경상북도에 밀집되어 있으며, 100여 호가 넘는 집성촌은 없다. 영천 지역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전하여 큰 공을 세우고 이어 무과에 급제한 삼(三)자 항렬에 따라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영천시 조동(棗洞)과 대창면 강회리에는 현감 전삼익(全三益)의 후손과 통덕랑 전삼성(全三省)의 후손이 대를 이어 살고 있으며, 금호읍 약남리 수남마을에는 병마절도사 전삼달(全三達)의 후손의 집성촌이 있다. 자양면 삼귀리에는 전삼익의 후손이 살며, 대창면 오길리에는 전삼익의 아들 수군절도사 전존성(全尊性)의 후손이 세거하고 있다. 또 영천시 도림동에는 전삼성의 후손이, 금호읍 냉천리에는 막내인 훈련원첨정 전삼득(全三得)의 후손이 각각 세거하고 있다.

[관련 유적]

영천 지역에는 입향조 배위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지은 화산재(花山齋)가 화산면 화산리에 있으며, 영천시 녹전동(錄田洞) 대추골[조동(棗洞)]에는 오인정(五印亭)과 봉화현감 전삼익의 소강처인 조곡정(棗谷亭), 전삼성이 학문을 닦던 대곡서당(大谷書堂)이 있다.

금호읍 수남(水南)마을에는 전삼달의 유서(諭書)와 유품이 있고 또한 어서각(御書閣)이 있다. 대창면 오길리에는 전우필(全宇弼)의 우모정(寓慕亭)이 남아 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4.13 오자 수정 맣은을 많은으로 수정
2017.09.01 관력 수정 성균관교리(成均館校理) ->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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