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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985
한자 李甫欽
이칭/별칭 경부(敬夫),대전(大田),충장(忠莊)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전민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397년연표보기 - 이보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29년 - 이보흠 식년문과에 급제
몰년 시기/일시 1457년 10월연표보기 - 이보흠 사망
활동 시기/일시 1457년 - 이보흠 순흥부사에 임명됨
추모 시기/일시 1738년 - 이보흠 이조판서에 임명됨
추모 시기/일시 1791년 - 이보흠 충장(忠莊)의 시호 추증, 단종의 묘정에 배향
묘소|단소 이보흠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죽곡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이대전유허비 -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순흥연 -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
사당|배향지 대전정사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영천
저술 『대전실기(大田實記)』

[정의]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개설]

우리나라 이씨(李氏)의 본원(本源)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 서기 32년에 씨족집단인 6촌을 6부로 개칭하면서 6부 촌장에 6성(姓)을 사성(賜姓) 전할 때,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촌장인 알평공(閼平公)에게 이씨(李氏)를 사성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평공은 신라 초기 화백회의(和白會議)를 시행한 6부촌장의 의장(議長)이었으며,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신라 초대 왕에 추대한 공으로 후에 법흥왕(法興王)문선공(文宣公)의 시호를 추증하고, 무열왕(武烈王)은열왕(恩烈王)으로 추존하였다 한다.

영천 이씨(永川李氏)는 알평공계 이씨에서 분종된 것으로 전하고 있으나 문헌상 기록을 찾지 못하여 고려 초기에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고울군(高鬱君)[영천의 옛 이름]에 봉해진 이문한(李文漢)을 시조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후 세계가 불분명한 부분이 있어 이대영(李大榮)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으니 이보흠(李甫欽)의 7대조이다.

[가계]

이보흠의 자는 경부(敬夫), 호는 대전(大田)이며, 1397년(태조 6)에 태어나 1457년 10월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송현(李松賢)이며, 증조는 경덕재생(經德齋生)으로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추봉된 이흡(李洽), 조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석지(李釋之)이다.

부친은 부사직(副司直) 이현실(李玄實)이며, 모친은 공인(恭人) 인동 장씨(仁同 張氏)로 보승랑장(保勝郞將) 장표(張彪)의 딸이다. 처는 증(贈) 정부인(貞夫人) 영천 최씨(永川崔氏)로 슬하에 1남 1녀를 두니 통덕랑(通德郞) 이간인(李盰仁)과 사위 영천인(永川人) 최자척(崔自滌)이다.

[활동 사항]

이보흠은 1429년(세종 11)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박사(集賢殿博士)가 되었다. 세조가 집권하면서 단종(端宗)이 영월로 물러나고 금성대군(錦城大君)이 순흥(順興)에 위리안치(圍籬安置)[죄인이 귀양지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 되었다.

이보흠은 1457년(세조 3) 순흥부사가 되어 금성대군과 더불어 상대하여 자주 비분강개의 눈물을 뿌리며, 몰래 남쪽 선비들과 결탁하여 노산군을 복위시킬 계획을 하였다.

하루는 금성대군이보흠을 불러 좌우를 물리고 격문(檄文)을 쓰게 하니, 그 내용에 “천자(天子)의 칙령(勅令)을 끼고 제후(諸侯)에게 영을 내리는데 누가 감히 따르지 않겠는가?”라고 되어 있었다.

이보흠은 순흥의 군사 및 남쪽의 모의에 참여한 자들을 동원하여 노산군을 맞아 영(嶺)을 넘어 오려고 하였는데, 순흥의 관노(官奴)로서 급창(及唱)된 자가 몰래 벽안에 숨어들어 그 말을 엿듣고 그 길로 금성궁(錦城宮)의 시녀(侍女)와 사귀어 그 격문을 훔쳐 오도록 해서 부랴부랴 한양으로 올라갔다.

그때에 기천 현감(基川 縣監)이 그 일을 듣고 말 서너 마리를 바꿔 타며 뒤쫓아가서 그 격문을 빼앗아 먼저 한양에 들어가서 상변(上變)하니 금성대군이보흠을 비롯하여 많은 남쪽 선비들이 죽임을 당했다.

[학문과 저술]

목판본인 5권 2책의 『대전실기(大田實記)』가 있다. 『대전선생실기(大田先生實記)』는 1883년에 이가순(李家淳)이 편집하고, 후손 이병연(李昺淵)이 5권 2책으로 1921년에 간행하였다.

현재 『대전실기』의 목판 89매를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장팔리 이학두가 소장하고 있으며, 시호를 내린 교지와 함께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6호로 지정되어 있다.

[묘소]

이보흠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죽곡리 단애곡(丹厓谷)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98년(숙종 24) 단종의 위호(位號)[지위와 명칭]가 사면되고, 1738년(영조 14)에 이보흠도 사면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1791년(정조 15)에 충장(忠莊)의 시호를 추증받고, 단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이보흠의 묘소 아래 묘재인 영모재(永慕齋)가 있으며,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이보흠의 행적을 적은 이대전유허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호]와 집터에 판 연못인 순흥연(順興淵),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덕연리에 대전정사(大田精舍)가 남아있다.

이보흠은 충청도 청안(淸安)의 향사(鄕祠), 광주(光州)의 대치사(大峙祠), 순흥의 성인단(成仁壇), 영천의 송곡서원(松谷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