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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089
한자 鄭應瑞
이칭/별칭 군길(君吉),학남(鶴南)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전민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7년연표보기 - 정응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9년 - 정응서 무과에 급제
묘소|단소 정응서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월곡리 월령개라곡(月嶺介羅谷)지도보기
성격 무인
성별
본관 영일

[정의]

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가계]

정응서(鄭應瑞)의 본관은 영일. 자는 군길(君吉), 호는 학남(鶴南)이다. 고조는 찰방(察訪) 정이휘(鄭以揮)이며, 증조는 찰방(察訪) 정차성(鄭次誠)이니 신녕(新寧) 고을로 이거하였다. 조부는 정윤온(鄭允溫)이며, 아버지는 정언침(鄭彦琛)이니 양대 모두 침랑(寢郞) 벼슬을 하였다.

어머니는 대구 배씨(大邱 裵氏) 배춘란(裵春蘭)의 딸이다. 정응서는 명종(明宗) 정사년(丁巳年)(1557)에 태어났다. 부인 경주 김씨(慶州 金氏)는 김만수(金萬壽)의 딸로서 슬하에 아들 통정(通政) 정흘(鄭屹)이 있다.

[활동 사항]

정응서는 용맹과 지략이 뛰어나고 큰 뜻이 있어 임진왜란에 권응수(權應銖)의 의병진(義兵陣)에 나아가 크고 작은 전투에 수십 번 선봉이 되어 공을 세웠다.

1599년(선조 32) 무과에 으뜸으로 합격하여 훈련원정(訓練院正)에 제수되었으며, 난이 평정되자 원종이등훈(原從二等勳)에 책록되었다.

[묘소]

정응서의 묘소는 영천시 화남면(華南面) 월곡리(月谷里) 월령개라곡(月嶺介羅谷)에 있으며, 족예(族裔) 정화식(鄭崋植)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임진왜란의 공훈으로 선무원종이등훈(宣武原從二等勳)에 책록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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