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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133
한자 鄭好禮
이칭/별칭 자립(子立),요산(樂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종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04년 1월 7일연표보기 - 정호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36년 - 정호례 무과에 급제
몰년 시기/일시 1672년 2월 27일연표보기 - 정호례 사망
묘소 정호례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지도보기
관련 유적 충이당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 지도보기
성격 충신
성별
본관 영일

[정의]

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가계]

정호례(鄭好禮)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자립(子立), 호는 요산(樂山)이며, 1604년(선조 37) 1월 7일에 태어났다. 고조는 정차근(鄭次謹)이고, 증조는 창릉 참봉(昌陵參奉) 정윤량(鄭允良)이며, 조부는 병조 판서에 추증되고 강의(剛義)라는 시호를 받은 정세아(鄭世雅)이다. 생부는 부호군(副護軍) 정수번(鄭守藩)이며, 어머니는 하성 조씨(夏城曺氏)로 생원(生員) 조희익(曺希益)의 딸이다. 백부 정의번(鄭宜藩)의 뒤를 이으니, 어머니는 영월 신씨(寧越 辛氏)로 참봉(參奉) 신덕린(辛德麟)의 딸이다. 부인은 순천 박씨(順天朴氏)로 참판(參判) 박팽년(朴彭年)의 6세손인 박종우(朴宗祐)의 딸이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니 아들은 정시상(鄭時相)과 정시교(鄭時僑), 대호군(大護軍) 정시심(鄭時諶)이며, 사위는 여이화(呂爾和)이다.

[활동 사항]

정호례는 1636년(인조 14) 무과에 급제하였는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임금의 수레를 호위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갔다. 이듬해 봄 어머니 상을 당하여 고향에 돌아와 상제(喪制)를 마치고 선전관(宣傳官)으로 나갔다가 벼슬을 버리고 돌아왔다.

1641년에 부장(部將)을 제수 받고, 1644년에 부사과(副司果)에 올랐으나 병을 핑계로 사양하고 돌아왔으며, 1659년(효종 10)에 선전관(宣傳官)을 제수 받고, 주부(主簿)로 옮겼다가, 다시 해남 현감(海南縣監)으로 전출되었으나 1661년에 사직하고 돌아왔다.

1666년 다시 군기 주부(軍器主簿)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1672년(현종 13) 2월 27일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정호례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하천(夏泉)에 있으며, 대사헌(大司憲) 권해(權瑎)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에 후손들이 정의번과 그의 아들 정호례를 추모하여 세운 충이당(忠怡堂)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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