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김재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395
한자 金在錫
이칭/별칭 극중(極中),희암(希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전민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7년연표보기 - 김재석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25년 4월 24일연표보기 - 김재석 사망
묘소|단소 김재석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1리 지도보기
사당|배향지 원관정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연계1리 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영양
저술 『희암집(希巖集)』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가계]

김재석(金在錫)의 본관은 영양. 자는 극중(極中), 호는 희암(希巖)이며, 1857년에 태어나 1925년 윤 4월 24일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김이기(金履基)이며, 증조는 김보택(金寶宅), 조부는 김성구(金聖九), 아버지는 김우성(金宇聲)이며, 어머니는 청주 양씨(淸州楊氏)로 양동후(楊東垕)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단인(端人) 나주 정씨(羅州丁氏)로 정주석(丁周奭)의 딸이며, 둘째부인은 단인(端人) 영천 황보씨(永川皇甫氏)로 황보교(皇甫校)의 딸이다. 슬하에 3남 3녀를 두니 아들은 김대현(金大鉉)·김병현(金秉鉉)·김세현(金世鉉)이며, 사위는 벽진인(碧珍人) 이종길(李鍾吉), 달성인(達城人) 서정목(徐正穆), 광주인(廣州人) 안종극(安鍾克)이다.

[활동 사항]

김재석은 효성과 우애가 깊고 뜻과 기개가 빼어났다. 이만인(李晩寅)의 문하에 종유하며 독서로써 뜻을 구하고 수신으로써 몸을 삼가며, 어버이 모심에 정성이 지극하였다. 일을 처리함에는 먼저 기미를 살폈으며 여럿과 더불어 선(善)을 즐겼다.

흉년을 당하여는 집안의 곳간을 비우는 베품이 있었고, 벗을 사귐에는 재물을 나누는 의리가 있었다. 늦게 정자를 지어 널리 책을 사들이고 따로 위토를 두어, 그로써 선조들의 제사에 공여하고 후학들을 돕고 손님을 맞았으니, 당시 사람들은 남쪽 고을의 인물이라 칭송하였다.

1901년에 고을 유림들이 학행으로 천거하여 종사랑(從仕郞)이 제수되었다.

[학문과 저술]

목판본인 4권 2책의 『희암집(希巖集)』이 있다.

[묘소]

김재석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1리 화촌(花村) 만당산(萬唐山) 남하봉(南下峰)에 계좌(癸坐) 향으로 있으며, 완산(完山) 이후(李垕)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연계 1리에 소요처(逍遙處)인 원관정(遠觀亭)이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