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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재[재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750
한자 夏泉齋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포은로 1549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우경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근대 추정 - 하천재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8년 - 하천재 이건
현 소재지 하천재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포은로 1549 지도보기
원소재지 하천재 - 경상북도 영천시 성곡리[현 영천댐 수몰지 내]지도보기
성격 재사
양식 장혀수장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벽진 이씨 위계종중
관리자 벽진 이씨 위계종중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벽진 이씨 위계종중의 묘하(墓下) 재실(齋室).

[개설]

하천재(夏泉齋)는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이며 장사랑을 역임한 이배원(李培源)이의(李椅) 부자와 함께 통정대부 작위 이수눌(李守訥)과 이수겸(李守謙)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위치]

자양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9호선을 타고 평천리 방향으로 200여m 이동하면 좌측에 하천재로 들어가는 샛길이 있다. 길 초입 좌측에 ‘벽진 이씨 하천재 입구’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10여m 뒤에 하천재가 있다.

[변천]

하천재의 창건연대는 밝힐 수 없으나 1978년 영천댐 건설공사로 성곡리 아래[현 영천댐 수몰지 내]에서 마을 위쪽 성곡리로 이건하였다. 하천재의 관리자인 이종활[남, 58세]의 증언에 따르면 영천댐 수몰 이전에 재실이 있었으며, 어릴적[초등학교 입학 전]에 재실에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고 한다. 건물의 부재와 증언을 비교해 볼 때 하천재의 건립 시기는 근대로 추정되며 이건(移建) 시 부재의 교체 등 약간의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형태]

하천재는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대지에 재사, 부속사, 대문채를 ‘ㄷ’자 형태로 배치하고 일곽은 블록담장을 둘렀다. 재사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규모이며, 가운데 둔 두 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1칸, 우측에 2칸의 방을 드린 형식이다. 우측방의 배면에는 벽장을 설치하고 배면을 제외한 모든 면에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대청 전면은 판벽사이 문을 설치하여 폐쇄시켰다. 정지한 대지에 기단을 낮게 조성하고 화강석 초석을 놓았다. 기단 상면은 시멘트 모르타르로 마감하였다.

기둥은 모두 각주를 세웠는데 단면크기가 180×180㎜로 규모에 비해 세장한 것을 사용하였다. 기둥상부는 장혀와 납도리를 수장하고 보아지를 받쳐 보를 결구하였다. 가구는 3량 구조로 대들보 위에 제형 대공을 세우고 종도리를 받게 했다. 종도리 장혀 하부에는 상량 묵서가 기록되어 있다. 창호는 방의 경우 정면과 양 측면에 창을 내어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았다. 청방 간 출입문은 아래 굽널을 끼운 사분합 들어열개문을 달았다. 대청 전면에는 아래 굽널을 끼운 사분합 들어열개문을 달아 마루방을 이루게 하였다. 대청 뒷벽은 쌍여닫이판문을 달았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으로 함석가첨을 덧달았다.

[현황]

하천재는 뒤로 산을 등지고 재사, 부속사, 대문채가 ‘ㄷ’자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재사 좌측에 3칸 규모의 대문을 세워 재사로 출입케 하였으며, 우측에는 3칸 규모의 부속사를 배치하였다. 건물 및 주변의 관리 상태는 양호한 편이고 묘제는 매년 음력 10월 초에 지낸다.

[의의와 평가]

영천댐 건설로 이건된 하천재는 창건연대와 창건 당시 건물의 형태를 파악하기 어려우나 벽진 이씨 문중에서 선조에 대한 정신을 본받고 추앙하는 풍습을 잘 지켜나가고 있는 측면에서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재실은 영천 지역 재실의 특징이 약간 엿보이며 근현대로 오면서 변화되는 건축사적인 면도 살필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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