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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781
한자 追遠齋-北安面-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유리
집필자 우경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8년 - 추원재[북안면] 중수
현 소재지 추원재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광릉1길 23 지도보기
성격 재사
양식 소로수장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광주 이씨 석전종중
관리자 광주 이씨 석전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비지정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유리에 있는 이당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재사.

[개설]

추원재는 고려 시대 생원이며 조선 시대에 이조판서를 증직 받은 이당(李唐)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이당은 부인 인화 이씨와의 사이에 오형제를 두었는데 그 중 둘째 이집(李集)이 후대에 번성하였다.

이집의 호는 둔촌, 호연 등으로 문장과 도덕으로 명성을 울렸으며 1368년(공민왕 17) 신돈의 미움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자 노부를 등에 업고 과거 동기인 천곡(泉谷) 최원도(崔元道)가 있는 영천으로 피신하였다. 천곡은 인근 주민들 앞에서는 그들을 내쫓고는 손님들이 돌아가자, 둔촌 부자를 다시 데리고 와 아무도 모르게 4년간을 자신의 집 다락방에 숨겼다.

천곡은 가족들에게도 이 사실을 비밀로 했고, 식욕이 왕성해졌다며 밥을 큰 그릇에 고봉으로 담게 하고 반찬도 많이 담게 해 세 사람이 나눠 먹었다.

그 후 영천에 수색이 시작되어 천곡의 집에도 포졸들이 들이닥쳤으나 둔촌 부자를 쫓아버린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으로 무사히 모면할 수 있었다. 그 이듬해인 1369년 둔촌의 부친이 돌아가셨다. 천곡은 자기의 수의(壽衣)를 내어다가 예에 어긋남이 없이 빈 염을 하고 자기가 묻히고자 잡아 놓은 자신의 어머니 산소 아래에 장사지냈다. 이곳이 바로 도유리에 있는 광주 이씨 시조 묘소 즉, 광릉이다.

[위치]

수량이 매우 많아 북안면 전체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는 도유지 서쪽, 마을 입구에서 도유지를 바라보며 안쪽으로 1㎞ 정도 들어가면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면서 왕릉 못지않은 웅장한 규모에 주변 또한 말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는 무덤이 있다. 이곳은 광주(廣州) 이씨 대종회에서 시조로 모시는 이당의 무덤이고, 그 앞에 추원재가 있다.

[변천]

이당은 1368년 둘째 아들과 함께 영천 최원도의 집으로 피신하였고, 이듬해 1369년 죽었다. 1570년 7대손 이의경이 청도 군수로 있을 때 묘표를 세우고 위토(位土)를 사고 묘막을 세웠다. 1669년에 외 후손 심재가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 새 묘표를 개수하였는데 11대손 우윤 이원정이 비문을 지었다. 1736년에 또 개수함에 12대손 판윤 이의만이 이어서 기록하였다.

오래되어 돌이 삭고 이끼가 끼어 글자를 분명히 살펴 볼 수 없게 되어 대종회의 발의로 용머리와 거북 좌대로 하여 비석을 새로 크게 다듬어 1983년 네 번째로 다시 세웠다. 상석도 새로 하고 석등도 세워 의물을 다 갖추게 되었으며. 비문은 옛글 그대로 새기고 옛 비석은 추원재 마당에 옮겨 두었다. 추원재는 1978년에 중수되었다.

[형태]

광주 이씨 시조 묘 아래쪽 평평한 대지에 추원재와 대문채가 있는 재사 영역과 우측에 관리사 및 부속사 영역이 검정 벽돌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재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실의 배열은 가운데 둔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1칸씩의 방을 드린 형식이다. 화강석 면석과 갑석을 이용하여 기단을 높게 축조하고 가운데 3단의 계단을 설치하였다. 초석은 화강석을 가공하여 세우고 기둥은 민흘림을 두었는데 전면에만 원주를 세우고 나머지를 각주를 세웠다.

문은 전면에 모두 아래 굽널을 끼우고 위는 교자 살 형태의 4짝 여닫이문을 설치하고 상인방과 창방 사이에는 광창을 끼워 넣었다. 청방 간 창호는 4짝 여닫이문과 한 짝의 외여닫이문을, 대청의 뒷벽에는 쌍여닫이 판문을 달았다.

가구는 5량 구조로 대들보 와 종보를 겹쳐서 결구하고 마룻보 위에 사다리꼴 형태의 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게 한 형식이다.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쓴 겹처마에 팔작지붕 형식이다.

[현황]

추원재는 벽돌담장으로 재사와 관리사가 분리되어 있다. 재사 정면에는 맞배집 형식의 3칸 소슬 삼문이 세워져 있고, 우측에는 관리 및 부속사가 ㄱ자 형태로 배치되고 소슬 삼문 옆으로 나란히 사주 문이 세워져 있다.

재사 앞쪽으로 넓은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고 사주 문 우측 앞에는 광주 이씨 시조 묘소 묘각 연혁을 기록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둔촌의 후손들이 산 아래에 천곡의 은혜를 추모하기 위해 보은당(報恩堂)을 지었으나 지금은 허물어지고 없으며 충비(忠婢) 제비를 잊지 않기 위해 제비의 무덤 앞에 술과 밥을 지어놓고 제사를 지냈는데 6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단을 유지하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무덤 일대에는 나현회관 앞에 둔촌선생 유적비가,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이곳에 은거해 정착한 사간 최원도, 장례원판결사 최형도, 형조 참의 최정도 3형제의 단을 수호하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지은 묘재인 나현재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의의와 평가]

추원재는 2001년부터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생활의 길잡이』[‘이호연과 최원도의 우정이야기’]에 실려 있고, 일본강점기에는 교과서에 ‘진우(眞友)’란 제목으로 수록되어 둔촌천곡의 우정에 대해 일본 사람들이 존경하면서 교과 과목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조상 숭배 등 효의 중요성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체험 학습장 및 교육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