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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1788
한자 元堂齋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원당리
집필자 우경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4년 - 원당재 중수
현 소재지 원당재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대원당길 94-23 지도보기
재실 경진헌 -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대원당길 94-23[원당리 180]지도보기
성격 재사
양식 장혀수장
정면 칸수 5칸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영일 정씨
관리자 영일 정씨
문화재 지정 번호 비지정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원당리에 있는 정광후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재실.

[개설]

영일 정씨는 시조 정습명 때부터 영일에 세거를 하였으나 고려 말에 정몽주(鄭夢周)가 순절하자, 가문이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전공판서(典工判書)였던 정인언(鄭仁彦)이 아들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와 함께 영천 남전촌(南錢村)[지금의 도동]으로 은거하게 됨으로써 영천이 세거지(世居地)가 되었다. 원당재는 9대 정광후를 모시는 재사로, 정광후는 고려 시대 가선대부 공조판서를 역임했다.

[위치]

영천 북안농공단지 앞 반정교차로에서 돌할매로를 따라 1㎞ 직진하면 내포2교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대원담길을 따라 1㎞ 이동하면 원당마을이 있다. 마을 초입에 상언재가 있고, 상언재에서 마을길을 따라 300여m 직진하면 십자형의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회전하여 산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그곳에 원당재가 있다.

[변천]

원당재는 창건된 지 수 백년이 되었지만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고 허물어진 것을 1984년에 새롭게 중수하였다. 재사 우측에는 정광후의 부친인 정인언을 추모하기 위한 경진헌이 있다. 정인언은 1392년에 77세의 나이로 영천 남전촌에 은거하였고 묘는 실전(失傳)하고 없어 원당에 재실을 지어 추모하고 있다.

[형태]

원당재는 원당마을 동편의 절골 산기슭에 남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재사는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이며, 실의 배열은 가운데 둔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방 2칸, 우측에 방 1칸을 연접시켰으며, 전면에는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경사지에 건립한 건물로 기단은 전면에 화강석 2단을 배면에는 화강석 1단으로 축조하였다. 초석은 넓적한 방형의 자연석을 놓고 기둥은 각주를 세우고 민흘림을 두었다.

창호는 방의 경우 정면에는 세살 쌍여닫이문을 달았으며 청방간에는 아래 굽널을 끼운 외여닫이 세살문을 달았다. 또한 대청은 전면에는 창호 없이 개방하였으며 뒷벽은 쌍여닫이 판문을 달았다.

기둥 상부는 간략한 장혀 수장으로 처리하고 보 밑에는 보아지를 설치하였다. 가구는 3량 구조로 대들보 위에 긴 동자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게 한 형식이다. 처마는 서까래만 쓴 홑처마에 지붕은 맞배지붕 형식이다.

[현황]

원당재는 원당·경진헌·주사(廚舍)·대문채 등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고 일곽은 블록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3칸 맞배집 형식의 대문채를 들어서면 정면에 경진헌이 있고, 경진헌 좌측에 원당이 배치되어 있다.

원당 좌측에 직각으로 4칸의 주사 건물이 있고 마당은 쇄석을 깔아 놓았다. 경진헌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전면과 퇴칸 좌·우로 계자난간을 둔 팔작지붕 건물이다. 묘제는 양력 4월 2주 일요일에 지낸다.

[의의와 평가]

원당재는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른 핵가족화와 교통의 발달 등으로 동족 관념이 희박해지면서 점차 소멸되어 가고 있으나, 물질 만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조상 숭배 등 효의 중요성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교육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