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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체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2283
한자 常棣亭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태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12년연표보기 - 손한기, 상라리 배골마을에 종택 건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9년연표보기 - 상체정, 기문 게판
현 소재지 상체정 -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상리리 지도보기
성격 누정
양식 초익공|홑처마|맞배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1.5칸
문물|보호단위 등급 비지정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손한추(孫漢樞)를 위해 손한기(孫漢機)가 지은 정자.

[개설]

손한추[1664~1712]의 본관은 밀양, 자는 두일(斗一), 호는 지헌(芝軒)이다.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효도와 우애 그리고 문학으로 이름을 알렸다. 저서로는 『지헌집(芝軒集)』이 전하고 묘소는 고경면 파계리에 있다.

아우 손한기[1668~1745]의 자는 두삼(斗三), 호는 국포(菊圃)이며, 역시 이형상 문하에서 수학했다. 저서로는 『국포일고(菊圃逸稿)』가 전하며, 묘소는 고경면 상리리에 있다.

[위치]

상체정(常棣亭)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상리리에 있다. 영천 시내에서 포항 방면으로 이어지는 국도 28호선을 따라 가면 고경면소재지 직전의 도로 좌측에 고경농공단지가 있고 단지 옆으로 상리리로 들어가는 마을길이 나온다. 상리리 배골마을 북쪽의 구릉 하단부에 상체정이 보인다. 상체정 진입부에는 삼성정이 있다.

[변천]

손한추가 죽은 해인 1712년 아우 손한기상리리 배골마을로 들어와 종택을 건립했다. 후손 손종옥[고경면 상리리 배골마을 거주]에 따르면 종택의 사랑채를 상체정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상체정의 기문은 1939년에 작성되어 게판(揭板)되었다. 1917년에 작성된 『영양지(永陽誌)』상체정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기문을 작성했던 1939년에 앞서 1917년 이전에 종택의 사랑채가 상체정으로 이용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형태]

상체정은 배골마을 언덕에 ‘一’자형의 정자가 남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상체정 뒤에는 ‘一’자형의 강학당이라고 하는 건물이 상체정과 평행하게 배치되어 있다. 상체정의 평면은 정면 4칸, 측면 1.5칸으로 좌측에 대청 두 칸을 두고 우측에 온돌방 두 통칸을 드린 뒤 전면에 반 칸의 퇴를 둔 편당형이다.

퇴 가장자리에 계자각 난간을 두른 헌함을 두었고 건물의 좌측면과 배면에는 쪽마루를 두어 동선의 편의를 도모했으며, 진입은 측면 진입이다. 창호는 청방 간에 사분합 들문을 두었고 대청 좌측면은 판벽에 쌍여닫이 판창, 배면은 판벽에 외여닫이 판창을 달았다. 방의 전면에는 쌍여닫이 세살창을 달았고 배면에는 외여닫이 세살문을 달았다.

구조는 퇴칸에 원주를 세우고 나머지는 방주를 세웠는데 퇴칸 주 상부는 초익공으로 꾸미고 오량 가의 가구를 완성했다. 지붕은 홑처마의 맞배지붕으로 박공 면에 풍판을 달았다. 상체정 뒤의 강학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삼량 가 구조이다. 중앙의 대청 두 칸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드린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으로 청방 간에는 사분합 들문을 설치했다. 강학당은 종택의 안채를 이용했다고 전한다.

[현황]

상체정은 배골마을을 내려다보며 가장 위쪽에 있으며 종택의 입지로 손색이 없다. 상체정은 손씨 종택의 사랑채, 뒤의 강학당은 안채를 이용했다고 한다. 건물 주위에는 상당히 오래된 토담이 간헐적으로 남아 있어 오래된 느낌을 준다. 상체정은 기단을 시멘트로 마감했고 최근에 계자각 난간을 새로이 조성했다. 건물의 좌측면에는 풍판 아래에 골슬레이트로 만든 가적지붕을 덧대었다.

[의의와 평가]

상체정손한추·손한기 두 형제의 우애가 상당히 돈독했음을 알 수 있는 당호로 건립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약간의 변형이 있지만 대체로 건립 당시의 목부재가 그대로 남아 있어 건축적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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