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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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 팔공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은해사의 말사. 거조암은 창건 당시에는 거조사(居祖寺)라 불렀다. 초창 시기는 원효가 세웠다는 693년(신라 효소왕 2) 설과 경덕왕대[742~765]에 왕명으로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어 809년 창건 연대가 확실한 본사 은해사 보다 앞선다. 고려 시대 보조국사 지눌(知訥)[115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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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예술, 또는 기술이 낳은 구축물. 건축은 사람이 활동하는 공간을 준비하여 제공해 주는 것으로, 사람에 의해 점유되는 공간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활동이 포함된다. 특히 한 지역의 건축 문화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 활동의 프로세스를 반영한다. 따라서 영천 지역의 건축 형태 및 성격은 기후와 지리, 산출 재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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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을 1세조(世祖)로 하며, 김자양(金自養)과 김함(金緘)을 입향조로 하는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경주 지역 시림(始林)[계림(鷄林)]의 금 궤짝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신라 탈해왕이 성을 김(金)이라 지어 준 김알지(金閼智)가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시조이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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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고경면(古鏡面)은 1934년 4월 1일 행정 구역 개편 때 통합된 고촌면과 청경면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서 고경면이라 하였다. 고경면은 신라 경덕왕 때 임고군에 속하였으며, 고려 초기에 영주군에 속하였고, 조선 시대에 들어와 1415년(태종 15) 행정 구역 개편으로 고촌면과 청경면으로 구분되었다. 193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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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의 초기 국가 시대부터 신라 멸망까지의 역사. 영천 지역은 삼한 시대에 소국인 골벌국(骨伐國)을 형성하였다가 신라로 편입되었으며, 이후 교통과 군사의 요지로서 중요시되면서 발전하여 왔다. 1. 선사 영천 지역에 사람이 살았던 자취는 이 지역에 산재한 많은 유적과 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화산면 연계리와 금호읍 어은리 등에서 발견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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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역사. 신라 말기로 가면서 정치가 혼란해지자 지방에서는 호족 세력이 등장하였는데, 이들은 농민 봉기를 배경으로 각처에서 일어나 반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그리하여 자기들의 근거지에 성을 쌓고 군대를 보유하면서 스스로 성주(城主) 또는 장군(將軍)이라 칭하면서, 그 지방에 대한 행정권과 군사권,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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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신라 말기의 행정구역. 고울부(高鬱府)는 절야화군(切也火郡) 혹은 임고군(臨皐郡)으로 불리던 영천 지역이 신라 말기에 명칭이 개칭된 지역이다. 절야화군[임고군]이 고울부로 개칭된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925년(고려 태조 8) 10월 고울부 장군 능문(能文)이 군사를 거느리고 고려에 투항하였다든가 927년(태조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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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천리(古川里)는 오래 전부터 마을 앞으로 운주산(雲柱山) 골짜기의 맑은 물이 흘러 이름 붙여진 고천(古川)에서 유래되었으며, 고내·고냇골이라고도 한다. 고천리(古川里)는 600여 년 전 고려 말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고천리의 동쪽 약 2㎞ 지점에 위치한 고내와 고냇골은 고천리에서 가장 안 골짜기에 있으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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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시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었던 소국. 골벌국은 신라 양주(良州) 임고군(臨皐郡)의 영현인 임천현(臨川縣) 지역에 있었던 소국(小國)이다. 골화국(骨火國)·골벌소국(骨伐小國)·골화소국(骨火小國) 등으로도 불린다. 『삼국사기』 권34 지리지에는 신라 조분왕이 골화소국을 쳐서 멸망시켜 현(縣)으로 삼았다고 하고, 『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 조분왕 7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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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 치산 계곡의 중턱에 위치한 폭포. 공산 폭포(公山瀑布)는 1980년 대구시가 경상북도와 분리될 때 팔공산(八公山)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공산 폭포로 표기가 통일되었다. 그러나 폭포 인근 지역인 대구에서는 팔공산에 있다 하여 팔공 폭포라 부르며, 영천에서는 신녕면 치산리 치산 계곡의 지명을 붙여 치산 폭포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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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盧穗)를 시조로 하고, 노탁(盧琢)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광주 노씨(光州盧氏)의 시조는 중국 범양(范陽) 출신으로 당나라 한림학사를 지낸 노수(盧穗)이다. 당나라 선종(宣宗) 말인 859년 전후에 난을 피하여 아들 9형제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로 이주하였다. 처음에는 평안도 정주(定州) 능리촌(菱里村)에 정착하였다가 용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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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일어난 호국(護國)에 관한 사실. 영천은 일찍이 고대부터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국난 극복의 보루 역할을 한 사례가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영천이 국가의 어려움이 있을 때 그를 극복하는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영천인들의 국난 극복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1. 신라 김유신(金庾信)과 호국 여신(女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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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權幸)은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원래는 김씨(金氏)였다. 930년 왕건(王建)의 고려군이 견훤(甄萱)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웠다. 이에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하여 식읍(食邑)으로 내림과 동시에 권씨(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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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권응수(權應銖)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 의병장으로 많은 공훈을 세워 1604년(선조 37)에는 선무공신(宣武功臣) 2등으로 책록되어 효충 장의 협력 선무공신(效忠仗義協力宣武功臣)이라 하고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이어 도총부 도총관이 된 뒤 1606년 경상도방어사, 1608년 남영장(南營將)을 겸하였으나 그해 7월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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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權幸)은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원래는 김씨(金氏)였다. 930년 왕건(王建)의 고려군이 견훤(甄萱)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웠다. 이에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하여 식읍(食邑)으로 내림과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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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 안동 권씨(安東權氏)의 시조인 권행(權幸)은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원래는 김씨(金氏)였다. 서기 930년 왕건(王建)의 고려군이 견훤(甄萱)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웠다. 이에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하여 식읍(食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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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안동 권씨(安東 權氏)의 시조인 권행(權幸)은 원래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성씨는 김씨(金氏)였다. 930년 왕건(王建)의 고려군이 견훤(甄萱)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웠다. 이에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시켜 식읍(食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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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안동 권씨(安東權氏)의 시조인 권행(權幸)은 원래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원래는 김씨(金氏)였다. 서기 930년 왕건(王建)의 고려군이 견훤(甄萱)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웠다. 이에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하여 식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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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대의리에 있는 산성. 금강 산성은 영천시 완산동과 고경면 대의리에 걸쳐 있는 금강산[해발 150m]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나지막한 산봉우리를 따라 쌓은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금강 산성은 지금까지 『삼국사기』 지증왕조의 기록에 의거하여 당시 골벌국(骨伐國)에 축성된 골화성(骨火城)으로 보기도 하며, 『영양지(永陽誌)』 성곽조의 기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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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대리(金大里)는 본터가 가장 일찍 생긴 마을로 현재 20여 가구의 의성 김씨(金氏)들이 살고 있다. 찜대[蒸大]는 뒷산에 은(銀)을 제련하는 은점이 있었다고 전하며, 삼[大麻]을 찐 곳이라 하여 찜대리라 했다 한다. 금대리의 명칭은 김씨(金氏)와 찜대[蒸大]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금대리는 금대(金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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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화리에 있는 산. 기룡산(騎龍山)[961.2m]은 영천시 자양면 용화리·용산리·성곡리·충효리와 화북면 정각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운주산(雲柱山)·보현산(普賢山) 등과 함께 자양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기룡산 산지의 동·서·남 방향은 험준한 산지로 마을이나 농업 지대가 발달하지 못하였지만, 북쪽 방면의 해발고도 300m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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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기룡산 중턱 골짜기에 있는 바람구멍. 기룡산(騎龍山) 풍혈은 ‘기룡산 얼음골’이라고도 한다. 최근 기룡산에서 풍혈(風穴)이 두 곳 발견되었는데, 영천시 화남면에 거주하는 김태호 씨가 약초 채집을 목적으로 등산을 하던 중 고요한 주변에 비해 동굴 입구에서 바람에 의한 고사리의 움직임을 보고 찬바람을 내뿜는 동굴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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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영양 김씨의 시조(始祖)는 영의공(英毅公) 김충(金忠)이다. 712년 10월 1일 중국 하남성(河南省) 여남(汝南)에서 출생하였으며 벼슬은 당 왕조에서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다. 755년(신라 경덕왕 14)에 안렴사(安廉使)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태풍을 만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죽도에 표류해 오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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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의 안동 김씨 입향조. 안동 김씨(安東金氏)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후손으로 고려 시대에 형부상서(刑部尙書)·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를 거쳐 시중(侍中)에 이르고 시호가 충렬(忠烈)인 김방경(金方慶)을 중시조로 하고, 고려 공민왕(恭愍王) 때 민부의랑(民部議郞) 겸 성균직강(成均直講)이 되어, 정몽주(鄭夢周)·박상충(朴尙衷)·이숭인(李崇仁) 등과 함께 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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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에 있는 중악석굴과 김유신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김유신과 중악석굴」은 삼국 통일을 이룬 김유신 장군이 굴속에서 수도를 했다는 이야기로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언급되어 있으며, 이 석굴이 경북 영천시 팔공산 자락에 있는 중악석굴임을 밝히고 있다. 김유신은 17세 때 외적을 평정하려는 뜻을 품고 중악석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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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성(丁德盛)을 시조로 하고, 정천학(丁千鶴)을 중조(中祖)로 하며, 정몽길(丁夢吉)과 정몽상(丁夢祥)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나주 정씨(羅州丁氏)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당나라에서 신라의 압해(押海)로 유배를 당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압해가 나주에 소속되면서 후손들이 나주를 관향으로 하게 되었다. 후손들은 압해 정씨(押海丁氏)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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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성(文多省)을 시조로 하고 문흥범(文興範)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남평현[현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 출신으로 신라 지증왕과 진흥왕, 진지왕 대에 걸쳐 고위 관직을 지내고 남평 문씨의 시조가 된 문다성의 후손으로 문중실(文中實)을 파조로 하는 의안공파(毅安公派) 후예로 영천 입향조는 문흥범이다. 문흥범은 일찍 무과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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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자연경관이 좋은 곳에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은 다락집.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로서 정루(亭樓)·정각(亭閣)·정사(亭榭) 라고도 부른다. 평면구조는 정사각형으로부터 직사각형·육각형·팔각형·자 형·부채 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직사각형이 대부분이다. 누정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널리 보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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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덕연리(德淵里)는 마을에 큰 소(沼)가 있는데, 이를 덕연(德淵) 또는 덕소(德沼)라 부른 데서 유래하였다. 덕연리의 윗마을에는 영천 이씨와 안동 김씨가 주로 살아 왔으며, 아랫마을에는 영천 이씨가 주로 살아 왔다. 덕연리는 신라 경덕왕 때부터 임고군(臨臯郡)에 속하였고, 고려 시대에는 임고현(臨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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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남부동에 속하는 법정동. 도남동(道南洞) 명칭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도동과 예곡면 봉동 일부를 통합하여 도남리가 된 데에서 유래하였다. 도남동 지역은 영천 청제비(永川菁堤碑)의 유적으로 보아 서기 500년대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아울러 문헌에도 도동화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도남동 지역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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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에 있는 산. 도덕산(道德山)[703.2m]은 영천시 고경면과 경주시 안강읍의 경계에 있으며, 인근의 자옥산(紫玉山)[570m]과 인접해 있다. 도덕산은 780년(신라 선덕왕 1) 때 당나라의 첨의사인 백우경(白宇經)이 참소되자 자옥산에 숨어 살면서 지금의 정혜사지(淨惠寺址)에 영월당(迎月堂)과 만세암(萬歲庵)을 세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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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던 행정 구역. 도동화현(刀冬火縣)은 절야화군(切也火郡)을 구성하는 다섯 개 영현의 하나였다, 757년(신라 경덕왕 16) 12월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도동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러나 전통을 고수하려는 진골 귀족들의 반발로 776년(혜공왕 12) 정월에 원래의 지명인 도동화현으로 환원된 듯하다. 이후에는 도동화현과 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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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고 정재달(鄭載達)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서기 32년인 신라 유리왕(儒理王) 9년에 6부촌(六部村)의 진지촌장(珍支村長) 지백호(智伯虎)가 정씨(鄭氏)로 사성(賜姓)을 받아 경주에서 살게 되니 본관이 경주였는데, 그 뒤 동래(東萊)로 분적(分籍)되었다고 한다. 동래 정씨(東萊 鄭氏) 기세조(起世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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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을 가리키는 절기. 동지(冬至)는 24절기의 하나로서, 일 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24절기는 태양력에 의해 자연의 변화를 24등분하여 표현한 것이며, 태양의 황경이 270°에 달하는 때를 ‘동지’라고 한다. 동지는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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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던 행정 구역. 매열차현(買熱次縣)은 양주 임고군(臨皐郡)을 구성하는 다섯 개 영현의 하나로, 757년(신라 경덕왕 16) 12월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민백현(黽白縣)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전통을 고수하려는 진골 귀족들의 반발로 776년(혜공왕 12) 정월에 원래의 지명인 매열차현으로 환원된 듯하며, 이후에는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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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매호리(梅湖里)는 매화(梅花)가 많고 자호천(紫湖川)[자양천(紫陽川)]이 마을 앞을 흘러 ‘매호(梅湖)’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매호리에서 으뜸가는 마을은 운천(雲川)마을로, 영천 이씨(永川李氏)가 많이 살고 있으며, 심곡마을에는 밀양 박씨(密陽朴氏)와 안동 권씨(安東權氏)가 주로 살고 있다. 동산리(東山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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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화리 기룡산(騎龍山)에 있는 사찰. 묘각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로 신라 선덕여왕 때 의상[625~702]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용왕과 관련한 사찰이라 이곳에서 용왕제(龍王祭)와 기우제(祈雨祭)를 자주 지냈다고 한다. 절의 부근은 예로부터 불교 신앙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절의 뒷산은 보현보살이 머무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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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던 행정 구역. 민백현(黽白縣)은 신라 양주(良州) 임고군(臨皐郡)을 구성하는 다섯 개 영현의 하나로, 757년(신라 경덕왕 16) 12월에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종래의 매열차현(買熱次縣)을 민백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전통을 고수하려는 진골 귀족들의 반발로 776년(혜공왕 12) 정월에는 원래의 지명인 매열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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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월성 박씨(月城朴氏) 경상북도 영천 지역 입향조. 월성 박씨는 신라 경명왕의 8남으로 월성대군(月城大君)에 봉해진 박언의(朴彦儀)를 시조로 하는 인재공파(忍齋公派) 파조이다. 박석문(朴碩文)의 호는 인재(忍齋)이며, 고조는 고려 중직대부(中直大夫) 예조전서(禮曹典書) 박유(朴瑜)이며, 증조는 고려 중군사정부령(中軍司正副令) 박구(朴龜), 조부는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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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고대 변한어에 기층을 둔 신라 경주 방언권에 속하는 방언. 영천 방언은 삼한어(三韓語)의 중심인 변한어(弁韓語)에 기층을 둔 신라 경주 방언권에 속하는데, 조선에 들어서서 대구~경주~포항과 군위~의성~청송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독특한 영천 방언을 형성하고 있으나 크게는 대구-경주 방언권에 속한다. 영천 방언의 역사적 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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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팔공산에 있는 은해사의 산중 암자. 백흥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산내 암자이다. 신라 경문왕(景文王)[?~875]때 혜철 국사(惠哲國師)[785~861]가 완공하였으며, 주변에 잣나무가 많아 창건 당시에는 백지사(栢旨寺)라 불렀다. 1546년(조선 명종 원년)에 인종의 태실을 팔공산에 모시게 되자 수호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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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총언(李忩言)을 시조로 하고 이배원(李培源)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벽진 이씨(碧珍李氏)의 시조는 고려 삼중대광 개국원훈 벽진장군(碧珍將軍) 이총언(李忩言)이다. 이총언은 858년(신라 헌안왕 2)에 태어나 938년(고려 태조 21) 81세로 사망하였다. 묘소는 성주군 서쪽 명암방(明巖坊) 수촌(樹村) 태극봉 아래에 있었다고 하여 심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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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학서산(鶴捿山)에 있는 사찰. 봉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1742년(영조 18)에 징월(澄月)이 창건했으며 이때 인근 보현산에 있던 법화사(法華寺)를 옮겨왔다. 법화사는 신라 문무왕[재위:661~681] 때 의상(義湘)이 창건한 사찰이다. 사찰을 옮겨온 설화가 전한다. 법화사의 한 사미승이 탁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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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2372번지 봉림사(鳳林寺)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불전. 봉림사 대웅전은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보현산 남쪽에 있는 조선 후기 다포계 주 불전이다. 봉림사 경내에는 현재 주 불전인 대웅전을 비롯해 최근에 건축된 산령각, 요사채가 있다. 봉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 말사이다. 위치는 경상북도 영천 시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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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왕산리 팔공산 자락에 있는 사찰. 부귀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부귀사는 591년(신라 진평왕 13) 혜림법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1873년(고종 10) 담운(曇雲)이 중창한 바 있고, 1882년 지금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자세한 연혁이 전하지 않지만, 591년(진평왕 13년)에 혜림법사가 거조암과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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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전파된 석가모니(釋迦牟尼)를 교조로 하여 부처의 가르침을 신봉하는 종교. 불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받들어 이를 세상에 펼치는 종교이다. 어느 나라의 불교든 사실은 석가모니의 학설을 기준으로 삼는데,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어떻게 펼치느냐에 따라 소승 불교(小乘佛敎)와 대승 불교(大乘佛敎)로 나뉘는데, 우리나라에 전해진 불교는 일반적으로 대승 불교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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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의 사찰에 소장되어 있는 불교의 내용을 그린 종교화. 불화가 언제 발생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불교 조각과 마찬가지로 불교의 성립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불화는 인도 아잔타(Ajanta) 석굴의 벽화들이다. 불화는 재질에 따라 구분할 때 흙이나 돌·나무 같은 것은 대개 벽면이나 지붕을 구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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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리(沙里)는 골짜기가 사방으로 담같이 둘러져 있고, 하천에 모래가 많아 담과 모래를 의미하는 사곡(沙谷)·장곡(墻谷)으로 칭한 데서 연유한다. 사리의 가정(柯亭)은 조선 숙종 때 성가정(成柯楨)이란 사람이 이 마을에서 살았고, 가정 남동쪽에 있는 마을 ‘감나무골’은 전주 이씨가 주로 살고 있었다. 예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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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던 행정 구역. 사정화현(史丁火縣)은 절야화군(切也火郡)을 구성하는 5개 영현의 하나였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 12월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사정화현은 신녕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전통을 고수하려는 진골 귀족들의 반발로 776년(혜공왕 12) 정월에 원래의 지명인 사정화현으로 환원된 듯하며, 이후에는 사정화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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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부처를 숭상하고 불법을 익히는 장소. 사찰은 사원(寺院)·가람(伽藍)이라고도 하며 우리말로는 ‘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은 고구려의 불교 도입 이듬해인 373년(소수림왕 3) 평양에 세워진 이불란사(伊弗蘭寺)와 성문사(省門寺)이다. 영천의 사찰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창건된 것은 은해사(銀海寺) 소속의 거조암(居祖庵)이다. 1. 삼국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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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매리(三梅里) 마을의 풍수를 보면, 마을 뒷산은 매화 가지가 뻗어 있는 형상이고, 앞산은 매화꽃을 향하여 날아드는 형상이라 매곡(梅谷)이라 칭하다가, 3개 이(里)가 합쳐서 삼매(三梅)라는 지명이 생겼다. 삼매리의 매곡마을은 조선 영조 때 형조 참의를 지낸 정중기(鄭重器)가 개척한 마을로, 270여 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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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이천 서씨(利川 徐氏)는 신라의 국운이 기울자 아우 서신통(徐神通)과 더불어 이천의 효양산에 들어가 스스로 처사라 하고 희성당(希聖堂)을 짓고 후진교육에 여생을 보낸 아간(阿干) 서신일(徐神逸)을 시조로 하고 있다. 서자이(徐自爾)의 자는 원지(遠之), 호는 심계(心溪)이다. 고조는 부사(府使) 서극인(徐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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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선원리(仙源里)는 조선 시대 인조 때 입향한 정호례(鄭好禮)가 ‘송내(松內)’를 도연명(陶淵明)의 무릉도원(武陵桃源)에 비유하여 ‘선원(仙源)’이라 부른 것이 마을 이름이 되었다. 선원동의 남쪽 자호천 건너편 들판에 정·김·이 세 성씨의 세 가구가 동네를 제일 먼저 형성했는데, 자연 마을 명칭은 세각단이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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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는, 흙이나 돌 따위로 높이 쌓아 만든 군사적인 방어 시설물. 성(城)의 사전적 의미는 ‘적을 막기 위하여 높이 쌓은 담’이며, 한자의 자의(字義)는 흙[土]으로 마련한[成] 시설물임을 뜻한다. 또한 성곽(城郭)이란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을 전부 일컫는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내성과 외성을 구분하여 축조하거나 뚜렷이 구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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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 팔공산 자락에 있는 사찰. 수도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647년(신라 진덕여왕 1) 자장(慈藏)과 원효(元曉)가 함께 창건했다고 전하지만,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 수 없고 창건 당시의 이름은 금당사(金堂寺)였다. 수도사는 647년(진덕여왕 1)에 원효와 의상이 함께 창건했다 하지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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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수성리(守城里)에 있는 운주산(雲柱山)은 산세가 험하여 외적들의 방어에도 유리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임진왜란 때 김백암(金柏岩) 장군이 병사를 인솔하여 성을 쌓고 진터를 설치하였다. ‘수성(守城)’이라는 지명은 산성을 쌓고 외적을 방어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수성리는 여덟 개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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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지역에서 어떤 사물에 대하여 바로 말하지 아니하고 유사 낱말을 통해 의문의 말을 찾아내는 언어 놀이. 수수께끼는 슈지, 슈지겻기라고도 하는 것으로 질문자가 어떤 사물과 현상을 유사 낱말을 통해 물으면 상대방이 그 답을 알아맞히는 언어 놀이이다. 수수께끼는 지역에 따라 ‘스무고개’라는 방식으로도 나타나는데, 무한정한 질문이 아니라 유사한 낱말 20가지로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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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행정구역의 명칭. 신녕현(新寧縣)은 신라 시대 사정화현(史丁火縣)·화산(花山) 등으로 불리다가 757년(경덕왕 16) 군현재 한화개혁의 일환으로 지명을 고치면서 신녕현(新寧縣)이라 하였다. 바다의 풍파를 막아 평안하게 지나게 한다는 뜻으로 명명하였다 한다. 『삼국사기』 잡지 지리조에 “신녕현(新寧縣)은 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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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시 금호읍 신월리에 있는 불교 사찰. 신흥사는 신라 진평왕 때 세워진 사찰이라 하나 지금의 신흥사는 1957년에 건립되었다. 신라 진평왕 때 세워진 사찰이라는 설이 전하지만, 신흥사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원래 평지에 있는 사찰이었으나 오래전에 경작지로 변하여 석탑만이 남아있던 것을 1957년 당시 금호 포교당에 있던 장백현이 신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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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행(權幸)을 시조로 하고, 권열(權挒)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의 세거 성씨. 안동 권씨(安東權氏)의 시조인 권행은 신라 왕실의 후손으로, 본래는 김씨(金氏)였다. 930년 왕건(王建)의 고려군이 견훤(甄萱)의 백제군과 대치하자 김선평(金宣平), 장정필(張貞弼)과 함께 고창군(高昌郡) 병산에서 백제군과 싸워 크게 이기는 공을 세워 왕건이 고창군을 안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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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안천리(安川里)는 신녕 땅 ‘안천’라는 뜻에서 이름 붙인 신안천(新安川)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안천리에 있는 자연 마을 중 신안은 신라 경명왕의 여덟째 아들인 월성 대군(月城大君)의 후손이 약 420년 전 능계에 거주하였는데, 박시량(朴時亮)이 이곳에 새로 마을의 터를 잡아 정착하였다고 하여 신안이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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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평리(良坪里)는 고인돌이 있는 양암(良巖) 마을과 운주산의 골짜기 물이 흘러가는 수평(水平) 마을을 합쳐 ‘양평’이라 하였다. 양평리 동쪽 편의 양암·돌빼기 마을에 큰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의 역사가 무척 오래된 곳임을 알 수가 있다. 예전에는 임고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이 모여 살았을 것이라 추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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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항리(良巷里)는 임고 서원(臨臯書院)의 교육적 역할과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효성으로 인하여 선량한 동네가 되었으므로 ‘양항(良巷)’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양항리의 담밑마을·성따물·갱마 등 세 자연 마을을 통칭하는 이름이 돌목·석항[石項]·양항이다. 돌목은 자호천이 흘러내려 돌이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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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과 문자 등의 수단. 또는 사회 관습적 체계. 영천 지역의 언어는 삼한어(三韓語)의 중심인 변한어(弁韓語)에 기층을 둔 신라 경주 지역의 언어권에 속하며, 영남[동남]의 언어권 가운데 대구 지역의 언어권[천시권, 1966]인 대구·영천·경주·포항·영덕·영양 지역의 언어권에 속한다.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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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일어난 변천과 흥망 과정의 기록. 영천(永川)은 삼한 시대 부족 국가 골벌소국(骨伐小國)이 형성된 이후 절야화군(切也火郡)·임고군(臨皐郡)·영주(永州)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조선조에 들어와 1413년(태종 13) 작은 군현은 주(州)라는 명칭을 금지하고, 대신 천(川)과 산(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면서 영천이라 하였는데,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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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음력 정월 초부터 대보름 사이에 연을 날리며 노는 민속놀이. 연날리기는 전 세계적으로 누구나 즐겨오던 놀이로 그 연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밝히기 어렵다. 다만 고대 사회의 제천의식의 하나로 연날리기를 하였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연날리기는 삼국 시대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진덕여왕 원년(647년) 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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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金忠)을 시조로 하고 김경손(金庚孫)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영양 김씨(英陽金氏)의 시조는 영의공(英毅公) 김충으로, 712년(신라 성덕왕 11) 10월 1일 중국 하남성(河南省) 여남(汝南)에서 출생하였으며 벼슬은 당 왕조에서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다. 755년에 안렴사(安廉使)로 일본에 갔다 돌아가는 길에 태풍을 만나 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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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정형식(鄭瑩植)이 편찬하고 영천향교(永川鄕校)에서 간행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읍지. 『영양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문묘(文廟)와 관련된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향안(鄕案)이며, 맨 마지막에는 간기(刊記)가 실려 있다. 읍지의 가장 첫 부분은 문묘위차(文廟位次)로, 그것은 다시 대성전(大成殿)·동배위(東配位)·서배위(西配位)·동종향(東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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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5년부터 1413년까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신라 때의 임고군은 군치와 장진현(長鎭縣)·임천현(臨川縣)·도동현(道同縣)·신녕현(新寧縣)·민백현(黽白縣)의 다섯 개 현을 영현으로 하였는데, 이 중 임고군 군치와 도동현, 임천현이 합하여 고려 초기에 영주(永州)가 되었다. 임고군 군치와 도동현, 임천현 등 인근 군현을 합해 영주로 만든 것은 92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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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용호리 구룡산(九龍山)에 있는 사찰. 영지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의 말사이다. 영지사는 신라 무열왕[재위 654~661] 때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창건 당시에는 웅정암(熊井庵)이라 하였고,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03년(선조 36) 다시 중창하면서 지금의 명칭으로 바꾸었다. 1774년(영조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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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에 있는 거조암의 주 불전. 은해사 거조암은 738년(신라 효성왕 2) 원참 조사(元旵祖師)가 창건했다는 설과 「은해사사적비문(銀海寺史蹟碑文)」에 742-764년(신라 경덕왕대)에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나 뚜렷하지 않다. 최근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진행한 경내 일부의 발굴조사에서 통일 신라 시대 유적·유물과 함께 거조사(居祖寺)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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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말[馬]을 국조의 탄생과 결부시켜 신성시하여 왔고 초자연적인 세계와 교감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 왔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말이 전해 준 알에서 태어났고, 고구려의 시조 주몽(朱蒙)이 타고 땅속을 통하여 조천석(朝天石)으로 나아가 승천했다는 기린말의 설화도 있으며,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서울 동대문 밖에 마조단(馬祖壇)을 설치하여 제사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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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봉림사의 대웅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의 불화. 봉림사는 신라 문무왕 때[661~681] 의상(義湘)이 창건한 보현산의 법화사를 옮겨와서 1742년(영조 18) 징월(澄月)이 창건한 사찰이다. 그 뒤 1857년(철종8) 소월(韶月)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천 봉림사 영산회상도」는 봉림사 대웅전의 삼존불 뒤에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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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용호리에 있는 영지사의 대웅전 및 범종각. 영지사(靈芝寺)는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용호리 구룡산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이다. 경내에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7호인 대웅전 및 범종각를 비롯해서 명부전·산신각·요사·삼층석탑과 입구에 임자갑유공비(壬子甲有功碑)와 역대 주지승의 부도(浮圖) 5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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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은해사 운부암 원통전에 봉안되어 있는 금동 보살좌상. 영천 은해사 운부암 금동 보살 좌상은 신라 헌덕왕 1년(809)에 혜철 국사가 창건한 은해사의 운부암에 모셔진 금동보살상이다. 높이 1m 가량의 아담한 보살좌상으로 화문과 불꽃무늬, 극락조(極樂鳥) 등으로 장식된 화려한 관(冠)이 특징이다. 불신에 비해 큰 불두, 화려한 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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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은해사에 있는 청동북과 북걸이. 은해사는 신라 41대 헌덕왕 1년(809) 혜철국사가 창건한 해안사가 전신으로, 현재 은해사는 암자가 8곳, 말사가 50여 개에 이르는 대 사찰이다. 은해사의 청동북은 조선 후기에 청동으로 제작된 것으로 크기는 지름 77.2㎝, 두께 12.7㎝로 비교적 크고, 유물의 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청동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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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도남동과 금호읍 구암리 경계에 있는 신라 시대에 축조한 저수지. 영천 청제는 신라 시대 476년 혹은 536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신라 시대 축조된 수리시설 중 지금까지 관개 수리시설로 이용되는 유일한 못이다. 2005년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152호로 지정된 바 있으며, 청제를 축조한 기록을 담고 있는 청제비(菁堤碑)는 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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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을 관향으로 하며, 최한(崔漢)을 시조로 하는 성씨. 최씨(崔氏)의 원조는 신라 6촌의 하나인 돌산(突山) 고허촌(高墟村)의 촌장 소벌도리(蘇伐都利)로 전한다. 그러나 그 이후의 세계(世系)를 상고할 수 없어 신라 말에서 고려 중엽의 인물을 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오늘날 계통이 자세하게 전하는 본으로는 경주(慶州)·전주(全州)·해주(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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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한광사(閑曠寺) 경내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 영천 화남리에 있는 구 한광사는 화산을 배경으로 남서향으로 터를 잡았다. 불전[현재 축대만 남아 있고 후대에 대웅전을 사역 동쪽에 건립함] 앞에 두 기의 탑이 있는 쌍탑 가람(伽藍)형식이었으나 폐사된 후 안동 권씨 권치선의 정사 건물이 건립되면서 동·서탑 등의 부재(部材)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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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을 관향으로 하며, 황보능장(皇甫能長)을 시조로 하는 성씨. 영천 황보씨(永川皇甫氏)의 시조인 황보능장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창업공신 가운데 한 사람인 금강성장군(金剛城將軍)으로, 신라에 쳐들어간 후백제의 군사를 고울부(高鬱府)에서 격파하는 등 공을 세워 영주군(永州君)[현 영천(永川)]에 봉해지고, 영천 일대를 식읍으로 받아 그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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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3년까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영천군(永川郡)은 1895년(고종 32) 갑오개혁 당시 지방 제도 개정건이 공포되어 새로운 지방 행정 제도가 설치되면서 영천군이 되었다. 고려 시대 영주(永州)로 불렸던 영천은 조선 개국 후 1413년(태종 13) 작은 군현은 ‘주’라는 명칭을 금지하고 대신 ‘천’과 ‘산’을 사용하도록 명하자 천을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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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남동부 중앙에 위치한 시. 영천시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와 노계(蘆溪)박인로(朴仁老), 최무선(崔茂宣) 등 많은 선현들을 배출하였으며, 임진왜란과 6·25전쟁 때는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지킨 호국·충절의 고장이다. 지리적으로 동경 128°42′~129°09′, 북위 35°49′~36°11′에 위치해 있으며,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350㎞ 지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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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정각리에 있는 천문 관측 시설. 영천시 보현산 천문 과학관은 전국에서 별이 가장 잘 보이는 보현산 정상[1,124m]에 있으며, 우리나라 천문 연구의 산실로 동양 최대의 1.8m 광학 망원경 등 첨단 천체 관측 시설을 보유한 연구 시설인 한국천문연구원 보현산 천문대가 있다. 영천시 보현산 천문 과학관은 천문 과학 학습 시설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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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는 기후적으로 일조량은 많은 반면에 강수량은 적은 편에 속한다. 따라서 농경을 위한 수리(水利) 시설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1,500여 개의 저수지가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고대 수리 시설의 모습을 밝혀 줄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서 영천시 도남동 청못 밑에 세워진 청제비(菁堤碑)가 있다. 영천시는 전국 최대량의 저수지가 분포되어 있는 지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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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지(方智)를 시조로 하고 방운(方雲)을 득관조(得貫祖)로 하며, 방이복(方以福)과 방이영(方以榮) 형제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온양방씨대동보(溫陽方氏大同譜)』 서문에 나오는 내용을 정리하여 보면, “신농씨(神農氏)의 후예로서 중국 하남(河南)땅에 거주하던 시조 방지(方智)는 문장이 뛰어나고 학문이 높았으며, 당나라 때 한림학사(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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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왕산리에 있는 고려 시대의 절터. 신녕면 왕산리는 일명 ‘칠밭골’로 불리는 곳으로, 왕산리 절터는 2000년에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절터는 인근에 있는 부귀사와 관련성을 가지는 것으로 판단된다. 왕산리 미륵불은 원래 부귀사 입구인 칠밭골마을 미륵당 안에 모셔져 있었는데 저수지 조성공사로 1998년에 현재 위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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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우항리(愚巷里) 명칭은 예전부터 우항 박씨(愚巷朴氏)들이 많이 살았던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우항리의 곡평(曲坪)마을은 옛날 아전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며, 평산 신씨(平山申氏)가 주로 살고 있다. 연하(連河)마을은 동리 앞 못에 연꽃이 많이 피었다 하여 연화(蓮花)라고도 부르는데 우항 박씨(愚巷朴氏)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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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당리(元堂里)는 이 지역의 자연 마을 ‘원당’에서 나온 명칭이다. 920년(신라 경명왕 4)대에 마을을 개척하였으며 마을이 크고 살기가 좋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당리는 본래 영천군 원당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영천군 북안면 원당동이 되었고, 1995년 1월 1일 영천시·영천군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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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봉죽리와 오수동의 경계에 있는 산. 유봉산(遊鳳山)은 영천시를 통과하여 흐르는 금호강(琴湖江)이 지류와 합류하는 지점 우안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240.6m이다. 완만한 서쪽 사면에 비해 금호강 우안에 인접한 동쪽 사면이 급하다. 유봉산의 북쪽으로는 하천 범람원에 논이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으로 하천에 인접한 지역은 밭과 과수원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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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파평 윤씨(坡平尹氏)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신녕현(新寧縣)] 입향조. 파평 윤씨(坡平 尹氏)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건국의 공으로 벽상삼한익찬공신 2등 삼중대광 태사에 이르고, 서기 943년 태조 왕건이 승하하고 혜종이 즉위한 후 신라 수도였던 동경[경주] 대도독으로 부임한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한다. 윤세강(尹世岡)의 자는 언남(彦南), 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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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의 본사. 은해사는 동화사(桐華寺)와 더불어 팔공산(八公山)의 대표적인 사찰로 지눌(知訥)이 거조암에서 신행결사(信行結社)를 도모한 바 있고, 홍진 국사(弘眞國師)가 머문 뒤에는 선교양종(禪敎兩宗)의 총본산으로서 사격(寺格)이 고양되었고, 영파(影坡)가 이곳을 중창한 뒤로는 화엄교학(華嚴敎學)의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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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은해사 중암암(中巖庵) 금당 뒤쪽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탑. 은해사 중암암 삼층 석탑은 팔공산의 기암으로 둘러진 해발 670m의 험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높이 3m의 작은 탑으로 통일 신라 시대 전형석탑의 외관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은해사 보화루(寶華樓)에서 골짜기로 약 1㎞ 들어가면, 신일저수지가 보인다. 여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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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 우리나라 이씨(李氏)의 본원(本源)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 서기32년에 씨족집단인 6촌을 6부로 개칭하면서 6부 촌장에 6성(姓)을 사성(賜姓) 전할 때,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촌장인 ‘알평공(閼平公)’에게 이씨(李氏)를 사성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평공은 신라 초기 화백회의(和白會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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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무인이자, 영천 이씨의 중시조. 이씨(李氏)의 본원(本源)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서기 32년)에 씨족집단인 6촌을 6부로 개칭하면서 6부 촌장에 6성(姓)을 사성(賜姓)할 때,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촌장인 ‘알평공(閼平公)’에게 이씨(李氏)를 사성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평공은 신라 초기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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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우리나라 이씨(李氏)의 본원(本源)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 서기 32년에 씨족집단인 6촌을 6부로 개칭하면서 6부 촌장에 6성(姓)을 사성(賜姓) 전할 때,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촌장인 알평공(閼平公)에게 이씨(李氏)를 사성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평공은 신라 초기 화백회의(和白會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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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문인. 우리나라 이씨(李氏)의 본원(本源)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 서기32년에 씨족집단인 6촌을 6부로 개칭하면서 6부 촌장에 6성(姓)을 사성(賜姓)할 때,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촌장인 알평공(閼平公)에게 이씨(李氏)를 사성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평공은 신라 초기 화백회의(和白會議)를 시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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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이씨(李氏)의 본원(本源)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서기32년)에 씨족집단인 6촌을 6부로 개칭하면서 6부 촌장에 6성(姓)을 사성(賜姓)할 때,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촌장인 ‘알평공(閼平公)’에게 이씨(李氏)를 사성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평공은 신라 초기 화백회의(和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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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약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우리나라 이씨(李氏)의 본원(本源)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인 서기 32년에 알천 양산촌(閼川 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촌장인 알평공(閼平公)에게 이씨(李氏)를 사성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평공은 신라 초기 화백회의(和白會議)를 시행한 6부촌장의 의장(議長)이었으며, 혁거세(赫居世)를 신라 초대 왕에 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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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이씨의 중시조(中始祖). 이씨(李氏)의 본원(本源)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서기32년)에 씨족집단인 6촌을 6부로 개칭하면서 6부 촌장에 6성(姓)을 사성(賜姓) 전할 때,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촌장인 ‘알평공(閼平公)’에게 이씨(李氏)를 사성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평공은 신라 초기 화백회의(和白會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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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합천 이씨(陜川李氏) 경상북도 영천 지역 입향조. 합천 이씨(陜川李氏)는 신라 말·고려 초의 인물인 이개(李開)를 시조로 한다. 이개는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의 문인으로 유학의 진흥에 힘써 그 공으로 강양군에 봉해졌으며 박경엽(朴敬燁)의 난을 토평하고, 다시 문학(文學)을 진흥시켜 중국에 버금가게 하였다고 하였다. 이개는 신라 6촌장 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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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일(徐神逸)을 시조로 하고 서백령(徐百齡)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이천 서씨(利川徐氏)의 시조는 신라의 아간(阿干) 서신일(徐神逸)로 국운이 기울자 아우 서신통(徐神通)과 더불어 이천의 효양산에 들어가 스스로 처사라 하고 희성당(希聖堂)을 지어 후진 교육에 여생을 보냈으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입향조는 서백령(徐百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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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이씨(李氏)의 본원(本源)은 신라 3대 유리왕 9년 서기 32년에 씨족집단인 6촌을 6부로 개칭하면서 6부 촌장에 6성(姓)을 사성(賜姓) 전할 때,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을 급량부(及梁部)로 하여 촌장인 알평공(閼平公)에게 이씨를 사성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평공은 신라 초기 화백회의(和白會議)를 시행한 6부 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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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 영천시는 경상북도의 남동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쪽은 경주시와 포항시, 서쪽은 경산시와 대구광역시, 남쪽은 청도군, 북쪽은 청송군과 군위군이 접하고 있다. 또한 중앙선과 대구선 철도가 동서로 뻗쳐 있고, 경부고속도로와 익산포항고속도로를 비롯하여 국도와 지방도 등이 통과하고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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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에 있는 마을. 영천 임고면 선원마을은 세 개의 작은 마을로 나눌 수 있는데, 가장 북쪽의 큰 마을이 ‘선원리 큰 마을’로 불린다. 선원마을에 들어서면 고색창연한 기와지붕이 즐비하고 솟을대문이 있어 반촌(班村)으로서 손색이 없다. 선원리 큰 마을의 범위는 마을 입구 언덕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0호인 함계정사(涵溪精舍)로부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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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던 행정 구역. 임고군은 757년(신라 경덕왕 16) 12월에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절야화군(切也火郡)을 임고군으로 바꾸었다는 기록에서 처음 등장한다. 절야화군은 임고군으로 이름이 바뀌고, 그 영현들의 이름도 바뀌게 되었다. 경덕왕 때 일제히 전국의 고을 이름을 바꾼 이유는 귀족 세력을 억압하면서 왕권을 강화하려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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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있는 행정구역. 임고면(臨皐面)은 기룡산(騎龍山) 언덕 밑에 임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므로 임고(臨皐)라는 명칭이 생겼다. 임고면은 신라 경덕왕 때부터 임고군(臨臯郡)으로 불리어져 오다가 고려 시대에 임고현(臨臯縣)으로 바뀌어 공양왕 때는 영천부(永川府)에 합병되었다. 그후 조선 시대에 들어와 1415년(태종 15)에 영천군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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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자양면(紫陽面)은 예로부터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으며, 학문과 예의를 숭상하여 마치 중국 송대 주자(朱子)가 서당을 세워 후진을 양성했던 자양산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자양면은 신라 경덕왕 때 임고군에 속하였으며, 고려 말 익양군에 합병되었다가 조선 개국 해인 1392년에 자양현이라 칭하고 익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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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던 행정 구역. 절야화군(切也火郡)은 신라 양주(良州)에 속한 군의 하나로서, 현재의 영천시와 포항시 일부를 관장하였다. 757년(경덕왕 16) 12월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으로 고치면서 임고군(臨皐郡)이 되었으나, 776년(혜공왕 12)에는 원래의 지명인 절야화군으로 환원된 듯하며, 이후 절야화군과 임고군의 명칭이 혼용되어 왔다.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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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하던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충신. 나주 정씨(羅州 丁氏)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당나라 사람이다. 벼슬은 승상(丞相)에 이르렀으나 신라 문성왕 때 신라에 귀화했다. 조선 세종(世宗) 때에 형 정몽길(丁夢吉)과 함께 신녕(新寧) 효정리(孝亭里)로 들어온 예조참판(禮曹參判) 정몽상(丁夢祥)이 영천 입향조이다. 정응거(丁應居)의 고조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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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남양 제갈씨(南陽諸葛氏)의 경상북도 영천 입향조. 제갈씨(諸葛氏)는 중국에서 계출(系出)된 성씨다. 원조는 주나라 우림장군(羽林將軍) 제갈영(諸葛嬰)이며, 현조(顯祖)는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유명한 제갈량(諸葛亮)[諸葛孔明]이다. 우리나라의 제갈씨는 신라 미추왕 때 귀화한 제갈충(諸葛忠)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 후 고려 충선왕 때 평장사(平章事)로 구산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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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고 전한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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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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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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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였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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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였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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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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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였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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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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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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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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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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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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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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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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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신.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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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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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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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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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 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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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창녕 조씨(昌寧曺氏)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3세(世) 소감(小監) 조송무(曺松茂)를 1세조로 하여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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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초인간적인 존재를 숭배하고 신성하게 여겨 선악을 권계하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문화 현상. 우리나라는 삼국 이전 시기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종교가 등장하여 성장·발전·쇠퇴를 거듭하였고, 그 전개 과정에서 시대적·지역적 특성들이 나타나고 있다. 영천 지역의 종교 활동 역시 일찍부터 나타나고 있고, 불교와 기독교·천주교 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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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봉죽리 유봉산(遊鳳山)에 있는 조계종 사찰. 죽림사는 조계종 10교구 은해사의 말사이다. 죽림사는 809년(신라 헌덕왕 1)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연혁은 알려진 바 없고, 임진왜란으로 사찰이 전소되었다가 중건된 내용만 알려져 있다. 그 뒤 1802년(순조 2) 다시 퇴락되었다가 1815년 임취봉·이상공 등의 시주로 중건하였고,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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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은해사의 말사. 중암암은 팔공산(八公山) 은해사의 산내 암자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암자로 가는 길은 마치 요새의 석문처럼 생긴 자연 바위를 지나야 하는데, 이 바위 덕분에 ‘돌구멍 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절은 통일 신라 때인 834년(흥덕왕 9)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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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룡(曺繼龍)을 비조(鼻祖)로 하고, 조겸(曺謙)을 1세조로 하며, 조신충(曺信忠)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창녕 조씨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사위로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에 봉군된 조계룡을 비조로 하고, 고려 태조(太祖)의 사위로 대락승(大樂丞)에 오른 조겸을 1세조로 하여 왔다. 하지만 구보(舊譜)의 대수(代數)가 같지 않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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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해사(銀海寺)는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팔공산(八公山)에 있는 사찰로, 은해사가 자리한 팔공산은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 동구와 경상북도 영천시·경산시·군위군·칠곡군에 걸쳐 있다. 갓바위를 경계로 대구 쪽으로는 동화사(桐華寺)가 있고, 영천 쪽으로는 은해사가 팔공산의 대표 사찰로 자리하고 있다. 팔공산은 중악(中岳)·부악(父岳) 등으로 불려져 온 영남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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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대(金之岱)를 시조로 하고 김시영(金是永)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김지대[1190~1266]는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고려 고종(高宗) 때 문과(文科)에 장원(壯元)을 하여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치고, 원종(元宗) 때 수태부중서시랑평장사(守太傅中書侍郞平章事)에 이르고 오산군(鰲山君)[청도군의 옛 이름]에 책봉되어 청도 김씨(淸道金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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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음력 8월 15에 지내는 명절. 추석(秋夕)은 ‘한가위’라고도 하며, 중추절(仲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 한다. 한가위의 ‘한’은 ‘하다[大·正]’, 가위란 ‘가배(嘉俳)’를 의미하는데, ‘가배’란 ‘가부·가뷔’의 음역(音譯)으로서 ‘가운데’란 뜻이다. 즉 한가위란 가을의 한가운데 혹은 정(正)가운데란 뜻을 가지고 있다. 추석 때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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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산 계곡(雉山溪谷)은 팔공산(八公山)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간직하고 있다. 여름이면 팔공산의 수많은 골짜기에서 모인 물이 공산 폭포(公山瀑布)의 낭떠러지로 쏟아져 물안개를 뿜어낸다. 공산(公山)은 팔공산의 옛 이름으로 치산 계곡의 공산 폭포에 남아 있다. 치산 계곡에 팔공산의 정체성이 남아 있는 셈이다. 치산마을 사람들은 공산 폭포를 치산 폭포(雉山瀑布)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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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에 속하는 법정리. 치산리(稚山里)는 마을 주위의 지형이 마치 꿩이 쪼그리고 앉아 있는 형상이라 하여 ‘치산’이라는 지명이 붙게 되었다. 치산리는 본래 신녕군 치산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동지동(東池洞)·중리동·내포동(內浦洞)·진곡동·신암동(新岩洞)·남원동 일부를 병합하여 치산동라 해서 영천군 신녕면에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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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남아 있는 석조 문화재. 탑은 졸도파(卒都婆)·솔도파(窣堵婆)·제다(制多)·탑파(塔婆)·부도(浮屠)·방분(方墳)·원총(圓塚)·영묘(靈廟) 등으로 불리며, 처음에는 석가모니의 묘(墓)였다. 그 뒤 불교의 전파에 따라 인도·중국·한국·일본 등 불교국에서는 가장 존엄함을 나타내는 건축 방법과 재료를 택하여 다수의 탑이 건립되었다. 중국은 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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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과 군위군 부계면 및 대구광역시 동구에 걸쳐 있는 산. 팔공산(八公山)의 명칭 유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 말 견훤(甄萱)이 서라벌을 공략할 때 고려 태조가 5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정벌하러 나섰다가, 공산(公山) 동수(桐藪)에서 견훤을 만나 포위당하였다. 그때 신숭겸(申崇謙)이 태조로 가장하여 수레를 타고 적진에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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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평천리(平泉里)는 들 가운데 샘이 있으므로 ‘들새미’ 또는 한자로 ‘평천(平泉)’으로 불리어 왔다. 또 임진왜란 이후 거듭되는 가뭄으로 온 마을의 식수가 고갈 상태에 이르렀을 때도 들판 아무 곳에나 우물을 파면 물이 잘 나왔다 하여 평천(平泉)이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평천리의 밑덤·다칭·다산(茶山) 마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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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에 있는 대승불교 법왕종 총본산 사찰. 한광사는 영천 신녕면 화남리에 자리하고 있는 대승불교 법왕종의 총본산 사찰이다. 현재의 한광사는 1958년 최명도가 중건한 것이다. 한광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1958년 최명도 스님이 중건하여 법왕종의 본산으로 삼았다. 중건 후 대웅전·극락전 등의 불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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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출신 작가들이 발표한 한문으로 된 문학 작품과 그 작품 세계. 우리나라 한문학(漢文學)의 역사는, 한자가 기원전부터 이미 우리나라에 서서히 도입되기 시작하였으므로, 줄잡아 2천년에 이르고 있다. 영천 지역의 한문학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겠지만, 현존하는 것으로 보면 청지(菁池)의 축조와 중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보물 제517호인 영천 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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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에서 정치 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국가의 질서 유지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뿐만 아니라 수도·전기·교통·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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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남리(華南里)는 화산(華山)의 남쪽이 되므로 화남리라 하였다. 화남리는 본래 신녕군 치산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무암동·온천동·상미동·갑현동(甲峴洞)과 별이동(別二洞) 일부를 병합하여 화남동이라 하여 영천군 신녕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5월 3일에는 동(洞)을 이(里)로 바꾸게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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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령면 화남리에 있는 산성. 화남리 산성은 영천시 신령면 화남리 해발 559.2m의 혈암산(穴岩山)에 있다. 성의 축조 시기와 경영, 폐성(廢城) 시점 등에 대해서는 기록이 부족하고 구체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자세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성내에서 삼국 시대 토기편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삼국 시대의 신라성으로 판단되며 신라의 북방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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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령면 화성리에 있는 성(城). 화성리성은 영천시 신령면 화성리의 신령 초등학교 왼쪽 낮은 구릉지에 있다. 이 성의 축조 시기에 대해서는 기록이 부족하고 구체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자세하게 알 수가 없지만 축조 기법이나 형태 등으로 미루어 보아 삼국 시대에 축성하여 조선 시대까지 사용하였다고 판단된다. 평면은 말안장 모양을 이루며 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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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황강리(黃岡里)는 못 안 골짜기에 있어 골말·곡촌(谷村)이라 하다가, 홍수가 나서 마을 안에 흙이 산처럼 쌓여 황토물이 가득 차고부터 ‘황강’이라 불렀다고 한다. 황강리는 1962년도 경지 정리 때 돌화살이 많이 출토되고, 근처에 지석묘가 있는 점 등을 참고하건대 아주 예부터 사람이 정착한 듯하다.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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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효리(曉里)는 조선 숙종이 민정 시찰을 하기 위해 이곳까지 오니 날이 새었다고 하여 ‘새벽골’이라 불리어진다. 또 마을이 동향으로 앉아 일광을 잘 받으므로 ‘효곡(曉谷)’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하는 설도 있는데, 지금은 ‘효리’로 바뀌었다. 임고면 삼매리에서 분리된 대곡(大谷)은 한때 60가구의 큰 마을이었으나...